▲ 절규 Skrik, The Scream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1895, 종이위에 파스텔, 개인소장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공항에 있는 TV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도 불통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가 아닌 외국어라서 그냥 스쳐 가는데, 스팅의 공연이야기가 나온다.

스팅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명이어서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 오래전에 올림픽 공원에서 했던 그의 콘서트 장면, 목소리가 생생하다. 파리테러 1주년 기념 공연……집에 돌아와서 자료 화면을 찾아본다.

“오늘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1년 전의 공격으로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삶과 음악을 느끼는 것입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희생자들을 위해 1분 동안 묵념을 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12일(현지 시각) 오후 9시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Bataclan) 공연장 무대, 묵념으로 시작한 공연, 스팅은 첫 곡으로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히트곡 '프래자일(Fragile·부서지기 쉬운)'을 노래한다.

일반 관객과 생존자, 희생자 유가족은 모두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렸고, 강렬한 비트가 울려 퍼질 땐 환호하고 열광했다.

활짝 웃는 아들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들고 와서 함께 무대를 바라보는 어머니, 사건이후에 처음으로 공연장에 나온 생존자도 있다. 그들을 보니 세월호 가족들이 생각난다.

진상규명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유가족, 그냥 시간이 흐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매우 피곤해서 잠시 멈추고, 난간에 기댄다. 우울해 지는 것을 느낀다.  피요르드와 도시 너머로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처럼 보인다.’
뭉크가 절규 시리즈를 그리는 과정, 느낌을 표현한 글이 프레임에 적혀있다. 극한의 공포와 절망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실존주의 관점에서 불안은 인류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세계와 연관된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현실에 우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아직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평범한 하루, 붉게 물드는 저녁하늘, 일상 풍경이 현실에 반영되어, 하루 일을 끝내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공포와 절망에 비명을 지르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화면을 사선으로 나누는 다리위에 극도의 공포에 귀를 막고 있는 얼굴과 그 얼굴을 다시 강조한 것 같은 붉은 하늘과 대비되는 검푸른 물의 소용돌이는 거칠게 표현한 선 때문에 더욱 불안해 보인다. 멀리 물위에 떠있는 배에는 카론이 타고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터지는 대형 스캔들 뉴스, 양파처럼 계속 벗겨지는 그들의 추악한 국정농단에 온국민은 뭉크의 그림처럼 절망하고 절규한다. 한마디로 멘붕!
그러나 희망을 갖자. 각자 촛불 하나씩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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