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식도(老馬識途)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으로 경험이 풍부하여 숙달한 인물 또는 그 일에 익숙하여 선도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노마지로(老馬知路),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도 한다. [한비자 설림상 韓非子 說林上]

관중(管仲)은 중국 춘추시대의 제(齊)나라 수상이다. 이름은 이오(夷吳)라 하고 자는 중(仲)이라 했다.

환공(桓公)을 도와 제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이끌었고 주(周)나라 왕실을 받들고 북방민족인 융적(戎狄)의 팽창을 막았으며 여러 제후국을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 잡는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연(燕)나라가 영지(令支)라는 북융(北戎)에게 침략을 받고 제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환공은 관중 및 습붕(隰朋)을 위시한 많은 장병을 거느리고 연나라로 달려갔다. 영지는 연나라 영토를 유린하고 주민의 많은 재물을 약탈하다가 제나라 군대가 온다는 말을 듣고 달아났다.

관중은 영지가 물러가긴 했으나 제나라 군대가 돌아서면 또 다시 침범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 기회에 토벌하여 후환을 없애자고 건의했다. 환공은 관중의 의견에 따라 영지의 군대를 추격해 갔다. 영지는 산이 높고 험준한 것을 이용하여 군사를 매복하고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제나라 군대를 당해내지 못했다.

영지는 고죽(孤竹)이란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협곡을 이용하여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제나라 군대가 진격하려면 반드시 황대산(黃臺山)의 험한 협곡을 통과해야 한다.

많은 참호를 파서 군사를 매복시키고 제나라 군대가 진입하면 그 후면을 나무와 돌로 차단하고 상류의 물길을 돌려서 막으면 제나라 군대가 물을 얻지 못하여 버티기 어려울 것이므로 이때 반격을 가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영지의 계책은 효과가 나타났다. 제나라 군대는 수로(水路)가 차단되어 고통을 겪었다. 전군에 명하여 수맥(水脈)을 찾아 물을 얻는 자에게는 큰 상을 준다하고 산을 누벼 수맥을 찾도록 했다. 습붕이 군에 명했다.

“개미는 수맥이 있는 곳에 집을 짓는다. 개미집이 있는 곳을 파라.”

군사들은 개미집을 찾아 헤맸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습붕이 다시 명했다.

“개미는 겨울에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지으니 산 남쪽에서 찾아야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서 응달로 가므로 산 북쪽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은 겨울이니 산 남쪽을 살펴 개미집을 찾되 마구 파헤치지는 말아라.”

군사들은 습붕의 지시에 따라 산 남쪽에서 병사가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수맥을 찾아 물을 얻었다. 이로써 제나라 군대는 황대산 협곡을 무사히 통과하여 영지군을 뒤쫓아 고죽으로 진격했다.

고죽의 군대는 제나라 병사를 한해(旱海)라는 사막으로 유인할 계획을 세웠다. 미곡(迷谷)이라고도 불리는 이 한해는 사람이 죽으면 의레 가져다 버렸고 때 없이 부는 폭풍은 따갑게 모래를 몰아쳐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자칫 미곡에 빠지기라도 하면 헤어나기 어렵고 독충과 맹수가 들끓었다.

고죽 사람들은 추장이 한해로 달아났다고 제나라 군대를 속였다. 따라서 제나라 군대는 쉽사리 이 험지에 빠지게 되었고 끝이 안 보이는 모래언덕에는 폭풍이 일고 모래가 흩날려 눈을 뜰 수 없다.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이라 병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관중은 환공을 모시고 행군하다가 급히 군사를 정지시켜 한 곳으로 집결시키고 환공에게 “신은 전에 ‘늙은 말이 길을 안다(老馬識途)’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말 중에는 이곳을 통과한 경험이 있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곳 토산(土産)의 늙은 말을 앞세워 따라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토산의 늙은 말을 뽑아 앞세우도록 했다.

말은 지혜롭게 험악한 사막의 길을 거침없이 인도하여 마침내 제나라 군대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한해를 무사히 빠져나온 제나라 군사는 늦춤 없이 진격하여 마침내 영지와 고죽을 평정하고 돌아갔다.

출판사 다할미디어 (02)517-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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