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나 결혼식, 개업식, 준공식 등에서 진행되는 의식 절차 중에 떡이나 케이크를 자르는 순서가 있다.

한 사람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 출발을 축하하는 결혼식, 큰 꿈을 안고 새로이 시작하는 사업의 출발 행사, 또는 오랜 기간 이어진 공사 끝에 마침내 완성을 축하하는 준공식 등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시를 낭송하는 등의 축하 의식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절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여기에 떡이나 케이크를 자르는 의식이 추가되었다. 서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케이크 절단 식은 주최 측에서 참석한 여러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달콤한 케이크를 나눠 주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왜 꼭 케이크여야 하느냐, 한국에는 전통이 오래된 떡이 있지 않느냐 해서 떡으로 바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전에 장관을 지낸 어느 문인께서 제의하여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유래야 어찌 되었든 이제는 떡이나 케이크를 자르고 나누는 게 크고 작은 축하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의례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좋은 취지의 그 의식에서 듣기에 조금은 의아하기도 하고, 혹은 약간 민망하기도 한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부터 “떡(혹은 케이크) 절단 식을 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이다.

'절단(切斷)'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자르거나 베어서 끊음’이란 뜻을 가진 한자어다. 무엇을 자르거나 베는 것, 또는 끊어낸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은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말은 사용하는 환경에 따라 언뜻 무섭고 냉혹한 의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쁜 것을 끊어내고, 잘못된 것을 도려내고, 잊고 싶은 것을 잘라내는 따위의 경우에 이 말이 주로 쓰이는 것을 보면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말이란 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수용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물론 말에는 음성언어만 있는 건 아니다. 음성언어로 구현할 수 없는 깊은 의미는 눈빛이나 마음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그래서 불교의 선 수행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불립문자니 이심전심이니 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말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한 경우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렇듯 말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불완전성 때문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선인들의 통찰은 부인할 수 없는 인류의 경험적 진실이기도 하다.

가장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행사장에서 좋은 의미로 떡이나 케이크를 나눠주는 의례를 진행하면서 거기에 섬뜩하고 냉혹한 의미를 가진 ‘절단’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는 더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견해로는 속히 다른 대체 용어를 찾아내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엔 좀 어색하고 불편할지 모르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노력하다 보면 변화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를 위해 필자의 경험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필자는 80년대 초 젊은 나이에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진행하면서 두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실천한 적이 있다.

지금도 누가 주례를 부탁하면 이 두 가지는 꼭 지키고 있다. 그 하나는 혼인 서약인데, 예식장에서 마련한 의례적 문구, ‘’신부(신랑)는 신랑(신부)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며 어떤 경우에도 아내(남편)로서의 도리를 다하겠습니까?‘라는 질문과 대답이 너무 형식적이라는 점에서 이를 필자가 새로 만든 문구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미리 본인이 직접 작성한 혼인 서약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고, 또 하나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의식의 마지막 순서로 새로 탄생한 부부가 하객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 전에 하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양가 부모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리게 한 일이다.  

앞의 것은 잘 모르겠으나 뒤의 것은 이제 거의 모든 결혼식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순서로 자연스럽게 고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문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생각한다면 실제 떡이나 케이크를 칼로 자르는 것을 ‘절단’이라고 하는 것이 어법상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 행위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 출발하는 축하의 자리에서 섬뜩하고 부정적 의미가 들어간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좀 더 축하와 기쁨의 뜻을 가진 말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바로는 ‘떡, 케이크 절단 식’이 아니라 ‘떡, 케이크 나눔 식’ 정도면 어떨까 한다. 물론 더 좋은 말이 있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 같은 곳에서 이런 점을 고려하여 더 좋은 말을 찾아내 권유하고, 국민들이 이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가 행사장에서 흔히 듣게 되는 민망한 말은 사라지고, 상황에 더욱 적절한 말이 널리 통용되게 되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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