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왕씨의 후예와 공주’ 특강

‘왕의 도시 공주’는 마을 곳곳에 왕족과 관련한 숨은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 문경호(공주대 역사교육과)교수의 ‘조선 초 왕씨의 후예와 공주’ 특강 장면

한옥마을 입구에는 고려 현종비와 조선 인조기념비는 고려/조선의 왕이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공주를 방문함으로써 공주가 왕의 도시임을 말해 주고 있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금강변에서 남쪽으로 들어가면 이름하여 ‘왕촌(旺村)’ 이라 불리는 마을이 나온다. 중동골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지명인 ‘왕촌’엔 특별한 사연이 전해오는데 고려말 왕씨 왕조가 망하면서 왕씨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은거하여 살았다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명덕산 아래에는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는 큰 묘소들이 있는데 이 묘소들은 왕씨들의 묘소라고 전해지고 있다. 

4월 20일 오후 2시부터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주관으로 진행된 문경호(공주대 역사교육과)교수의 ‘조선 초 왕씨의 후예와 공주’ 특강에 공주시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 왕촌 들어가는 길

문경호 교수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 정부는 ‘고려 지우기’ 작업으로 ‘禑昌非王設’(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손으로 규정. 고려사 열전편에 수록)을 주장하면서 고려 왕족들에 대한 참살이 이어졌다. 왕족들(154명)은 강화도와 거제도로 귀양을 가던던 중 수장을 당했고 숨어 살던 왕씨들은 성을 바꾸어 살았다. 그 중 공양왕의 자손인 왕강(王康) 부자가 공주로 귀양을 오게 됐다”며 “이 후 문종이 왕씨의 후예를 찾았으나 죽일까 두려워 의심하여 나타나지 않았다. 공주에서 제우지(齊牛知)가 잡혔는데 그는 고려 현종의 후손인 왕휴의 서손으로 변성(變姓)하여 살고 있었다. 이때는 왕씨들에 대한 멸족령이 해제된 때여서 문종이 변우지에게 숭의전 부사(崇義殿副使)에 임명하고 왕순례(王循禮)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왕우지는 양어머니를 만나러 공주에 다녀가기도 했다”며 왕순례가 숭의전부사가 될 때 하사받은 노비 30명의 본래 주인은 왕승(공주로 귀양 온 왕강의 아버지)으로 왕씨 후예와 공주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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