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rylic and crayon on ten wood panels, 250×500㎝ 2001-8 개인소장사이 톰블리 Cy Twombly, 1928 - 2011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사이 톰블리 회고전에 다녀왔다.

삼월 말은 마음만 봄이지 쌀쌀하고 집주변은 갈색과 엷은 회색이 섞여있었는데,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집은 온통 초록으로 바뀌었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다. 마음은 아직 프랑스에 있고 여행모드인 몸은 집에 있는데 할 일은 쌓여 있다. ‘한 달간 하고 싶은 일 만했으니 이제 하기 싫은 숙제도 해야만 해’ 나 혼자 중얼거린다.

꽉 찬 하루하루를 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은 일상이 우리 모습이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유에 씨리얼 말아먹고 학교로 가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학원차를 타고 학원으로 가서 또 공부를 한다.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원 수업, 점심은 학교식당에서 급식을 먹고, 형편이 나은 아이들은 다른 음식을 먹겠지만 저녁은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이다.

엄마 아빠도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이 모두 무엇인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여유라는 단어는 잊은 지 오래다. 그냥 상상 속에 있는 말일 지도 모른다. 이런 삶 때문인지 그림도 빼곡하게 꽉 찬 그림이 대부분이다.

완성도라는 말로 작가는 불안해하며 붓을 놓지 못하고 잡고 있다. 예전에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빈틈없이 채워야하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팔이 아프도록 힘을 주고 흰 도화지가 보이지 않게 색칠을 했었다.

스승의 날 즈음에 대학시절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며 사이 톰블리 전시얘기를 했다. 선생님도 퐁피두에서 회고전을 봤다고 하며 그의 용기가 부럽다고 했다.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며 그 흔적을 그대로 남기고 작품을 완성했다.

자연스럽게 물감이 흘러내리고 지운 흔적이 낙서 같은 자유로운 선과 여백과 잘 어울려 있다. 나라면 그 여백을 그냥두지 못했을 것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꽉 짜여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비어 있는 것을 원하지만 또한 그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한다.

동양은 예로부터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의 농담만으로 그리는 그림이 있다. 비어 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그림이 동양화이다. 흰 공간은 하늘이기도 하고 땅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하고 상상하는 그 무엇이 된다.

내면을 가득 채우면 물질은 비울 수 있을까? 가득차고 복잡할수록 더 이상 넣을 수 없다. 점점 물건이 많아지는 우리집과 작업실을 보며 마음은 버리고 싶은데 정리하려고 꺼내면 들었다 놨다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넣어둔다. 이 옷은 일 할 때 입으면 되겠고, 이 귀고리는 지난번에 여행가서 산거고…….

각각 물건마다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만지작거리다 다시 넣어둔다. 언제쯤 사물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뭉개고 물감이 흐르고 화면은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는 풍경을 보는듯하다. 그림을보며 사이 톰블리가 그림 앞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다. 그의 에너지와 흐르는 시간을 본다.

시간을 고스라니 간직한 조용한 사진 작품과 “지중해는 항상 하얀색이다(The Mediterranean…is always just white).”라는 그의 말을 볼 수 있는 조각 작품이 그림에 녹아있다. 그의 그림을 보며 깊게 숨을 쉰다. 떠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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