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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대통사와 성군 양무제 전생
2018년 11월 09일 (금) 13:38:40 해월스님(원효사 주지) 3777@kknews.co.kr

   

백제의 국찰 대통사를 말하려면 언제나 따라 오는 말이 양나라 무제입니다.

우선 대통이라는 이름이 바로 양나라 무제의 연호와 같아서 대통사는 양나라 무제를 위해 지은 절이 아닌가 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불교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양나라의 연호보다는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대통지승여래의 이름을 따서 불국정토를 꿈꾸던 백제인의 대통이 아니겠느냐 하는 주장도 있으니 귀 기울여 볼만 한 일입니다.

하여 이 글에서는 백제 무령왕(461~523)과 성왕(492~554)대에 이르러 수많은 문물을 교류했던 양나라 무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해 양무제(464~549)라고 말하지만 결코 쉽게 나올 수 없는 황제였던 까닭도 이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아 그래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몇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말해 보려 합니다.

1.양무제 전생
2.양무제 대통사
3.양무제 달마대사
4.양무제 지공대사
5.양무제 자비도량참법
6.양무제 합두대사
7.양무제 채식
8.양무제 보살황제
9.양무제 사신구법
10.양무제 천수경 주홍사

1.양무제는 전생에 사냥꾼이었는데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일어나서 돌부리를 걷어차니 들썩하기에 파내서 치우려고 보니 돌부처입니다. 죄송하고 미안한 생각에 돌부처님을 작은 굴에 모시고 과일이며 꽃을 따다 올리고 서원을 세웁니다.

금생에는 가난하고 박복하게 살지만 부처님께 기도하고 공양한 인연으로 다음 생에는 언젠가 황제가 되어 부처님을 위한 불사를 많이 하겠다는 원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굴을 가 보니 자기가 올린 제물은 내려져 있고 다른 공양물이 올려 져 있습니다. 몰래 숨어 살펴보니 원숭이가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자기도 기도를 올리는 것은 본 사냥꾼은 화가 나서 바위를 굴려 굴을 막아 버립니다.

원숭이가 저 사냥꾼이 황제가 되어 불사를 일으킬 때 자기도 신하가 되어 돕고 싶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는데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까닭에 원숭이는 그날부터 17일을 굴속에 갇혀 있다가 죽게 됩니다.

그가 훗날 양무제가 되고 원숭이는 불사를 돕는 신하가 되었다가 양무제를 유폐시켜 17일 만에 돌아가게 한다는 전생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인과응보 내지는 열 가지 선업을 닦으며 살고 올바른 서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직접 양무제 소연이 대통사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백제성왕은 양나라와 교류를 활발하게 하던 527년에 웅진 중심부에 대통사를 창건하고 불국토 건설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동서남북 사혈사가 대통사를 중심으로 불국토를 이루고자 하는 백제인들의 염원이 담긴 웅진백제 역사상 최초의 절이 대통사입니다.

3. 양무제는 서역에서 온 28대 조사인 달마대사를 친견하지만 대작불사의 공덕이 얼마인가 불법최고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대는 누구인가 등 몇 가지 문답을 통해 서로 인연이 아님을 깨닫고 양무제는 달마를 외면하고 달마는 소림사 석굴로 들어가 9년을 면벽하며 혜가라는 걸출한 제자를 만나면서 중국 불교 선종을 꽃 피우는 초조가 됩니다.

4. 서기 500년경 부처님의 법을 이은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오기 전에도 불교는 이미 중국에 전해져 널리 믿음이 확산되어 있었고 지공스님이라는 분이 양무제와 가까이 지내면서 문답을 통해 불교의 인과 법문 등 핵심을 전해주게 됩니다.

이후에 무제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여 여러 논서를 짓고 반야경 열반경등을 강론하기도 하였고 505년에는 수륙예문을 지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수륙재를 지냈으며 유학에도 밝아 국자학을 개설해 중용에 대한 풀이서도 내기도 하고 공자정언 오경강소 등을 저술 하였다 전합니다.

5. 양무제는 먼저 죽은 왕비 치씨가 탐욕이 많고 악행을 많이 지어 구렁이로 환생하였는데 그 몸에 달라붙은 벌레들로 인해 너무나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알게 되고 부인을 위해 천도하는 불사를 일으키고 스님들과 상의하여 자비도량참이라는 예문을 지어 무수히 많은 한 맺혀 외롭고 슬픈 영가들을 참회시켜 천도하는 참법 책을 짓습니다.

6. 양무제는 지공 외에 합두라는 왕사를 가까이 하였는데 바둑을 좋아하던 무제가 바둑을 두던 중에 생각난 듯 갑자기 대사를 모셔 오라 한 다음 대사가 와 있는 상태에서 바둑에 몰입하여 에이 그놈 죽여 버려라 소리칩니다.

바둑에 대마를 살리기 위해 작은 돌 몇 개 죽인다는 말이었지만 신하는 합두대사를 모시고 왔다가 그 말을 듣고 대사를 끌고 가 형장에서 참수해 버립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바둑 좋아하던 것을 그치고 이로 인해 과거 전생에 대사가 밭을 매며 호미 끝에 허리가 잘린 지렁이의 후신이 양무제였고 대사는 그 과보가 나타난 것이라 하는 가르침을 듣습니다.

7. 양무제는 불법에 심취하면서 동물을 살생함을 법령으로 그치게 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채식으로 하루 한 끼만 먹고 육류나 술등을 이용한 경연 등을 못하게 하며 사냥도구를 없애고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 애를 씁니다.

8.양무제는 보살계를 받고 자신을 보살황제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했으며 스스로 대승불교의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같은 현세에 출현한 보살로서 수행에 힘쓰고 불교를 위하여 천여 개의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며 스님들을 청하여 대법회를 여는 등 불국정토를 양나라에 구현하려 합니다.

9. 양무제는 황궁 옆에 동태사라는 대찰을 짓고 매일 불전에 나아가 기도하고 공양 올렸으며 네 번이나 자기의 몸을 동태사에 바치는 불사를 하였으니 그때마다 양나라 조정에서는 동태사에 바쳐진 보살황제 양무제를 되찾아 황실에 모시느라 억만금의 경비를 써야 했습니다.

10. 양무제는 우리가 잘 아는 천자문을 짓게 한 황제로 주흥사라는 학자에게 하룻밤과 낮 사이에 천개의 글자를 가지고 중복되지 않게 4구의 시문을 짓게 함으로써 그를 완성한 주흥사의 머리가 하루 사이에 백발이 되어서 백수문이라고도 불리우는 천자문을 지은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양나라는 어찌 되었든 무제가 지나치게 불법의 중흥을 위하여 애를 쓰는 바람에 국고가 탕진되고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자 그렇게 믿었던 대신이 역모를 꾀하여 무제를 폐위시키고 무제의 아들로 황제를 삼게 됩니다.

무제는 과거 생에 17일간 굴에 갇혀 죽었던 원숭이와 같이 17일간을 유폐된 상태로 있다가 돌아가게 되는데 그동안에 자신의 전생 인연을 깨닫고 대신을 원망하지 않으며 고승들의 죽음처럼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합니다.

성군으로 나라를 불국토로 만들고자 했던 양무제의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지만 우리 웅진백제 공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한번쯤 그의 행적을 기억하고 그가 꿈꾸고 바랐던 양나라의 불국토 건설의 원력이 바다를 건너 백제 땅에서 대통사지 복원으로 재현될 수 있기를 발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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