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무성산 자락의 쌍달작은미술관은 4월 초입에도 아직 쌀쌀하다. 마침내는 찬바람과 함께 옅은 눈발이 날려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였던가 금동산미술관의 유영열화백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지내? 한번 놀러와’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금동산미술관의 유영열화백은 여든을 넘겼지만 아직도 정정하며 예술작업에도 열정이 넘친다.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던 그를 알기 위해서는 1960년 10월 5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조선일보 곽아람기자가 쓴 신문기사를 인용한다.

제9회 국전(國展·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1960년 10월 5일, 덕수궁 북쪽 벽에 격정적인 추상화 50여점이 걸렸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해 국전 대통령상을 받은 이의주(李義柱)의 '온실의 여인'과는 거리가 먼 전위적인 그림들이었다.

김봉태(金鳳台), 김종학(金宗學), 손찬성(孫贊聖), 유영열(柳榮烈), 윤명로(尹明老) 등 서울대·홍대 미대 출신 20대 작가 12명으로 구성된 '1960 미술가협회' 일원들은 구상화에 치우친 국전의 수상 경향에 불만을 품고 전시를 기획했다.

4·19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대한민국, 서구의 표현주의적 추상예술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된 이 전시를 기획한 미술가협회는 1961년 4월 제2회 전시를 끝으로 해산했지만, 그들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우뚝 서 있다.

1863년 프랑스 파리에서 살롱전의 구태의연한 심사에 반발해 열렸던 '낙선전'의 주역 마네·모네·세잔 등이 훗날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1960년 국전이 열리고 있는 덕수궁의 바깥 돌담에 반국전을 선언하는 큰 목소리를 낸 ‘1960 미술가협회’의 회원으로 참여했던 유영열화백이, 이제 지나온 시간만큼 아름답게 나이들어 부드럽고 은은한 미소로 반겨준다.

그는 어린시절을 보낸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옛날 그집에 금동산미술관을 짓고 작업을 하며 찾아오는 손님들과 맛있는 차와 정담을 나누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 선생님이기도 한,‘1960 미술가협회’를 함께 했던 김봉태화백의 소개로 유영열화백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 이렇게 뛰어난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복이었다. 예술가의 고민과 고독을 아는 이는 바로 같은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차 한잔을 나누면서, 도란도란 서로의 최근 작업진행을 말하고, 예술가의 삶과 행동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또, 살아 온,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살아 갈 인생에 대한 교훈도 덤으로 얻는다. 바로 가까이에 이렇게 훌륭한 선배화가가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다.

이제는 완연하게 날이 풀려 봄기운이 가득하다. 금동산미술관의 앞뜰에도 여러 종류의 봄꽃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니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의 금동산미술관을 찾아오시라. 오랜 내공이 담겨있는 유영열화백의 작품도 보고, 또 작품만큼이나 화사한 그의 미소를 느껴보고.

아! 덩달아 쌍달리의 있는 나의 작업실에 오셔도 된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