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18회 무령왕탄생제 참가기

5월 29일(수)

인천공항-후쿠오카공항-시모노세키-야마구치시 유다온천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4시30분에 공주를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어스름한 아침이었고, 다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후쿠오카공항에 내린 것은 1시간 반 지나서였다.

조선통신사가 상륙한 시모노세키의 유적지에서 한일 외교역사를 설명하는 서정석 교수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같은 듯 하지만 다른 일본이었다. 공항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첫 도착한 곳은 그 유명한 시모노세키. 옛날 청일전쟁에 승전한 일본이 청국과 조약을 맺어 조선 침략을 본격화한 그곳, 과연 박물관에 가서 보니 그들이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는 회담장이었다.

청일전쟁 후 조약을 맺기 위해 마련한 회의장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조가 한 그 행위를 영원히 간직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교육하는 장소였다.

일본의 학생들이 이 회담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까? 회담장 의자 밑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이등방문, 이홍장, 이경방, 마건충 등 유명한 인사들의 직함과 이름을 한문으로 새겨놓고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 조상을 그토록 식민지 노예로 핍박하다가 우리 안중근 의사에 의해 하얼빈역에서 권총에 맞아 죽은 이등박문, 청국의 커다란 대륙만 자랑했지 나라의 힘을 함축하여 일본과 싸워 이기지 못한 당시의 청나라 이홍장 등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보면서, 서러움과 씁쓸한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우리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막막하고 가슴이 미어져 오는 느낌을 어찌할 바를 몰라 천장을 보다가 다시보고 하는 동작을 여러번 하면서 다음 장소들을 둘러보았다.

또한 이 지역은 임진왜란과 일제 36년간의 침략을 연관 지어보면 우리 조선반도로 가는 첫 길목이어서 더욱 씁쓸한 마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회담장 앞에는 우리 조선통신사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는 의미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었던 당시 김종필 의원의 기념비가 조촐하게 세워져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조그만 사찰과 赤間神宮을 둘러보는 정도의 관광을 하였다. 건물 대부분을 목조를 이용하였고 목조건물의 아름다움과 세심하게 만든 조각들을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 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목조주택과 닮았으면서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령왕 손자(성왕의 3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인 오우치 요시히로의 동상 

다음에 도착한 곳은 야마구찌시였다. 야마구찌는 백제 성왕과 관련이 있는 도시로서, 임성태자가 있던 도시였다. 임성태자는 무령왕의 손자로 백제 성왕의 제 3왕자 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14세기 일본 유력 호족인 오우치씨 족보에 따르면 611년 한반도에서 건너와 스오국(周防國) 다타라하마(多0良浜)에 정착했다고 한다. 

저녁 무렵에 아마구찌시 유다온천 리조트에 도착했다. 유다온천은 각종 질병을 치료해준다는 유명한 온천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다리를 다친 하얀 여우가 와서 목욕하고 다친 다리가 나았다는 이야기와 각종 피부병과 고혈압, 동맥경화 등 인간의 모든 질병을 물리쳐준다는 그 유명한 온천이었다.

야마구치의 '한국연구반'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한국연구반'은 작년 백제문화제에 참석, 우리와 함께 백제춤을 추기도 했다.

저녁 식사 겸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환영연이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야마구찌시 한국어연구반들과 함께한 교류행사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몇 시간 전 시모노세키 박물관에서 느낀 감정이 싹 달아나고 새로운 일본 친구들을 얻었다는 기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통역하는 나정희 선생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통역할 때는 말하는 사람의 느낌, 감정, 표현까지도 그대로 전달하려는 열정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였다. 나도 외국어를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본 당사자로서 외국어 구사를 어쩌면 저렇게 일본사람과 똑같이 할까 하는 부러움이었다.

교류행사는 9시 반이 넘어서 끝이 났다. 식사는 적은 듯하면서도 배부르게 먹고 즐거운 기분으로 끝이 났다. 한국어연구반 학생들은 우리나라 김은혜 교수의 지도로 한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인사 정도 하는 사람과 어떤 사람은 그런대로 의사소통을 조금은 하는 정도였다.

말하자면 초보과정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그래도 한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하였고,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더욱 친근한 생각이 들었다. 객실로 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와 일본 청주를 들고 정영일 회장님이 묵고 있는 방으로 몇 명이 모여들어, 첫날밤의 회포와 함께 일본여행에 대한 소회 등을 듣고 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조금 독서를 한 나로서는 유익하고 즐거운 토론의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일본의 태동 역사, 중세 일본의 사무라이 발전과정, 근세 일본의 발전과정과 쇠퇴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지질학을 연구한 이찬희 교수와 신홍렬 교수의 일본 생활담, 서정석 교수의 백제 역사 강의 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의문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백제가 멸망하고 몇십 년이 지나서 탄생한 일본서기, 그 속에 나와 있는 우리 역사적 사실, 정통의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본서기,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긴 토론이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깨어 유명한 온천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온천 하는 중에 우리 일행들과 만나 더없는 즐거운 일화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온천장을 가득 메웠다.

온천이 끝나고 일본식 아침 식사. 간소하면서도 조그만 식사지만 맛은 그럭저럭, 적게 먹는 유익함 그러나 아쉽게도 글로벌 음식인 우리의 김치는 없었고, 일본식 된장국이 일품이었다.  

5월 30일(목)
야마구치시 류리코지사찰-오우치유적-설주정원 (점심)-아키요시 석회동굴-시모노세키 호텔

일본의 역사공원 100선으로 자랑하는 류리코지사찰과 香山(향산)정원을 85세가 넘은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류리코지사찰과 오층목탑을 관광하였다. 이곳까지 야마구찌 한국어연구반원 5명이 동참하여 감명 깊었다.

일본의 3대 목탑으로 지정되어 국보로서 보존하고 있는 목탑, 층마다 의미 있다는 내용과 1층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2층부터는 공간이 비어있다는 내용, 우리나라처럼 단청이 되었다가 이제는 색이 바랜 모양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 오층목탑과 함께 연못과 정원시설, 그 모든 것이 일본색 그대로 정리, 깨끗, 간결, 소형화 등으로 표현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우치씨 가문의 대략적인 족보를 그려 보이며 오우치가문의 내력을 듣게 되었다. 오우치가문은 백제 시대 성명왕(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 태자가 스오 국의 연안에 상륙하여 가문을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에 백제의 철기 제련 기술과 선진 문물을 전파하여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한다.

14세기 막부의 규슈 평정에 참가하였고, 메이토쿠의 난에서는 쇼군을 도와 난을 제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조선 개국 초에는 조선과의 교역을 통해 오우치 가문의 전성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단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에 접어들어 가문 내부의 갈등과 가신 스에 하루카타의 반기 등으로 힘을 잃었으며, 마지막에 모리 가문과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멸망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오우치 가문의 집터와 정원을 보고 웅장한 모습과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인 해자(垓子), 정원, 수로 시설 등을 둘러보며 일본인들의 특징적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조 건물의 단아한 모습과 부처님을 항상 가까이 모시는 그들의 모습, 세계적인 축소지향의 정원을 꾸며 놓고 감상하며 생활했던 그들 조상의 지혜, 삶의 모습을 보는 시간이라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고, 오랜만의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조그만 호수에 물고기를 기르며 각 섬을 만들어, 학섬 배모양돌 거북이섬 등 다양한 모양의 섬을 만들어 놓고 즐겼던 그들이었다. 또한 조그만 폭포를 만들어 놓았으나 몇십 년 전 지진으로 물길이 끊어져 이제는 마른 폭포라는 돌멩이 숲 등 모두 이야기가 있는 정원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의 뷔페식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 일본인들의 특성이 가득 채워진 식사메뉴였다. 식판부터 소식하는 일본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바둑판식 반찬 판이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우리를 안내해 준 야마구찌 5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헤어졌다.

일본인들은 사람들이 헤어질 때는 꼭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것은 우리도 배워야 할 듯하다.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자동차가 보이면서부터 손을 흔들고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는 모양새였다. 역시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모습부터 우리와 달랐다.

카르스트 지형을 보여주는 아키요시 동굴의 장면

카르스트 지형을 설명하는 이찬희 교수

다음으로 들른 곳이 카르스트 지형으로 유명한 아키요시 공원과 동굴이었다. 지하로 들어가니 커다란 지하 공간과 폭포 모양의 종유석, 지하 석회석과 물이 만든 논밭 모양의 지형과 시원한 물소리 등을 관찰하였다.

지하를 빠져 나와 지상의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의 외관 모양을 보며 이찬희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지질학이라는 학문의 오묘함과 다양한 형태의 지질요소 그리고 만들어진 유래, 기간 등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다시 첫날 도착한 시노모세끼로 와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5월 31일(금)
무나카타시 오키노시마 세계유산 관련 시립박물관 관람-가라츠시 가가미야마 정상 관광-가라츠로얄리조트-석식후 교류회(가라츠, 마쓰로 무령왕네트워크)

일본 원시시대 제사유적의 오키노시마 설명. 이 유적으로 한반도와 중국대륙간의 교류를 알 수 있다. 

시노모세끼 호텔에서 1시간을 달려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宗像市)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박물관장의 설명, 중간의 서정석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구석기 유적부터 근세의 유적까지 그 모습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반도로부터 전래하고, 우리 선조들이 전해준 다양하고 많은 유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유물들을 보니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과 신석기 유적 중세, 근세의 유적들이 모두 우리의 것들과 닮았고, 비슷하고 똑같은 모습들이 많아서 일본이 우리와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비쳤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도착한 곳이 오키노시마 세계유산 관련 시립박물관을 보게 되었다. 수백 년 전부터 해오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이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이었다.

실제 행사 동영상을 보니 수많은 노인 청년 어린이까지 참여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즐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고 한편 부러움으로 관람하였다. 우리는 백제문화제에 아직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이곳 일본과 우리의 모습이 대조되는 모습이 더욱 부러움을 자극했다.

그곳 전시관에 도착하기 전에 공주 국회의원 정진석 의원이 이미 도착하여 우리를 맞이했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민간외교를 우리가 실제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부추겨주어 더욱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민간외교관으로서 한일간 꼬여있는 현 상황의 매듭을 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라츠군치축제 조형물이 전시된 기념관

가라츠군치 축제 캐릭터의 상품화

우리 현재의 모습은 모두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 근세의 일제 36년 지배로 일어난 한일 양국의 감정이 서로 얽혀 불편한 관계이다.

그래서 우리 한일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맺어줄 동아줄은 고대사의 백제 시대 한일교류를 모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사의 복원과 이를 통한 교류가 이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가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백제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간 약혼자를 기다리다 돌이 된 사요히메 동상 앞에서. 이 이야기는 일본 3대 전설의 하나로 사요히메는 소행성 별이 되었다.

박물관을 나와서 가라츠시 가가미야마 정상으로 가 가라츠 시내가 보이는 정상에서 일본의 사요히메(좌용희) 동상과 주변 경관을 감상했다.

사요히메 전설로서 6세기경 한 병사와 마을 처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단다. 내일 도착할 가당도(가카라시마)의 무령왕 탄생 섬도 멀리 보이는 듯하여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가라츠 미네 타츠로 시장에게 김정섭 공주시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조관행 과장

 

가라츠와의 교류 만찬에서 춤을 추는 양국 시민들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 시간 겸 교류회를 가졌다. 카라츠무령왕네트워크 회원들이 다수 참석하여 술과 음악과 춤으로 서로를 환영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문화교류에서 가장 확실하게 기억되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노래와 춤, 그리고 먹는 음식, 술 등이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더욱 느꼈다.

서로에게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서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일본사람들이 가져온 일본 술은 최고급이라는 것과 우리가 먹기에 좋은 정종 술로서 취기가 급하게 오르지 않고 적당히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기분이어서 우리를 즐겁게 취하게 했다.

음식 또한 정갈하고 입맛을 돋우는 요소들이 있어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렇게 저녁식사와 교류시간을 마무리하고 호텔 방으로 향하여 꿈나라로 들어갔다.

6월 1일(토)
나고야항 출발-무령왕탄신제-오미야우라(탄신동굴) 관람-공연 및 점심-사가현립나고야성막물관 및 나고야성건물지 유적 관람-후쿠오카공항-인천공항-공주도착

가카라시마 주민과 어린이들이 환영 현수막을 들고 공주팀을 맞이하는 장면 

텔을 나서면서 드디어 무령왕이 탄생하신 가카라시마로 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들뜨고 설레는 마음을 다독이며 나고야 항에 도착했다. 이곳은 우리 임진왜란과 깊은 악연이 있는 항구로서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또 한 번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항구에 도착하니 이미 곤지왕국제네트워크 회원들과 일본 내 무령왕네트워크 회원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서로 형제같이 얼싸안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연히 일본 산케이 신문기자를 알게 되었고, 나와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왔느냐고 한국어로 물어왔다.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내심은 현재 한일관계의 꼬임으로 그 심정은 서로 알고 있는 듯했다.

현재 한일관계는 정치인들의 현실이고 우리 민간인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현재 상황을 해결하려면 민간인들끼리 서로 많은 교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산케이신문 기자도 이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올 9월에 공주에서 하는 백제문화제에 꼭 오라고 요청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꼭 가서 보겠다고 하여 구두로 약속을 받았다. 우리는 공주에 오면 우리가 나와 환영과 함께 안내를 자세하게 하겠노라고 하니 그녀는 매우 기쁜 듯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것이 바로 민간외교의 시작인가하는 생각이 미치자 더욱 가슴이 벅차올랐다. 제발 꼬여있는 한일관계가 이것을 계기로 시원하게 술술 잘 풀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기원하였다.

배는 나고야 항구를 출발하여 20분 정도 가니 가카라시마에 도착하였다. 섬 입구에서부터 초 중학생, 마을 주민들이 한국의 손님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들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한글로 된 현수막을 보니 더욱 흥분되는 느낌과 더욱 친근한 기분이었다.

이들도 1500여 년 전엔 우리와 같은 핏줄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가 존경하는 무령왕을 기리듯이 이들 또한 무령왕이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면서 탄신제를 지내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와 같은 형제라는 생각이 더욱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무령왕탄생제에서 정진석 국회의원이 민간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말 장면

1시간여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마지막 순서로 정진석 국회의원의 축사가 이어졌다. 배배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방문했다는 것과 결과는 별 소득이 없어 안타깝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 이렇게 꼬인 현 시대적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 중에 이러한 민간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앞으로 정치인으로서 더욱 이러한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함께 하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무령왕이 탄생한 오비야동굴에서 추모의 에를 올리는 조관행 공주시 과장

의식이 끝나고 우리 일행들과 일본 일행 몇몇은 무령왕이 태어난 동굴을 답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걸어서 20여 분 거리의 바닷가 동굴과 무령왕이 태어나 물로 씻은 샘물을 보고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이 이유는 당시의 산기 있는 여인이 뱃멀미와 함께 산통을 이겨가며 겨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이곳에서 아기를 출산했다는 사실과 아기를 깨끗한 물로 씻기기 위해 주변을 찾아 헤매면서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다시 무령왕 탄신제 행사장이 차려진 초중학교 강당으로 가서 나머지 뒤풀이 행사가 이어졌다. 행사는 점심 겸 환영연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는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우리 일행들도 백제 춤과 함께 ‘돌아와요 쿠다라에’라는 우리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라는 곡에 개사한 노래를 불러 현지의 일본인들을 즐겁게 했다.

돌아가는 배 시간이 14:00에 정해져 있어 바쁘게 배에 올라 그리운 가카라시마와 헤어지는 시간을 가졌다. 헤어질 때는 섬 주민과 학생, 교사들이 모두 나와 이별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한없이 손을 흔들고 서로를 가슴 아리게 하였다.

심지어는 배가 출발하여 보이지 않자 그래도 잘 보이는 방파제 끝머리까지 뛰어와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정말 이들도 백제인인가? 이들도 우리의 같은 형제 혈육이 아닌가? 이런 물음을 가슴속에 계속 묻고 또 물어보면서 아쉬움을 달래었다.

반갑고도 짧은 시간이 아쉬워 손을 흔들며 내년을 기약하는 양국 시민들

배는 나고야 항구에 도착하고 이어서 나고야성이 있던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고야성은 임진왜란과 직접 관련이 있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진두지휘하던 곳으로서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7년간 갖은 고통을 당했던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잉태한 원초 기지였다.

정말로 가슴 쓰라린 우리의 통한의 역사 현장을 직접 발로 밟아보는 순간이었다. 설명 듣는 시간 내내 가슴 저리고 쓰라린 역사를 어떻게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이룩할 것인지 정말로 막막한 기분 그 자체였다.

당시 우리 선조임금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갈 궁리만 했던 것과 그나마 이순신 장군이 있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 두 가지 사실이 머리를 한순간 멎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잘못된 정치와 위정자들의 안일한 생각과 대처 등등. 이제는 잠시도 나라를 빼앗기고 침략당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더욱 걱정이 앞서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현재의 우리 학교 형편을 고려한다면 정말로 앞날이 걱정되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올바른 학생 교육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학생들은 점점 예의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면서 웃어른을 공경은 커녕 대들기까지 하는 지금의 세태를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정말로 안타깝기 그지없을 뿐이다.  

나고야성 유적지 답사. 바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가카라시마이다 

나고야성박물관과 유적지 관람이 끝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정희 선생의 재치로 노래와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즐거웠던 일과 가슴 저몄던 순간순간들의 영상이 눈앞을 오락가락하면서 3박 4일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한편으로 처음 밟아보는 일본여행이라는 면에서는 즐거웠고, 한편으로 우리의 쓰라린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는 면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가까우면서 먼 나라, 같은 것 같지만 다른 나라 일본. 우리와 같은 백제인들이었을 거라는 친근한 면도 있지만, 또한 우리를 36년간 지배하고 핍박했던 나라. 이러한 양면성을 갖고 있기에 더욱 대하기가 껄끄러운 나라 일본이었다.

지금 과거 역사를 보면 매우 밉고 불쾌하지만, 우리 현실을 보면 우리가 일본의 기술을 배워 우리의 먹거리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더욱 일본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밉지만 한동안 계속 일본을 이용하여 우리 경제를 살리고 국제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정말로 멀리할 수 없는 나라 일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찬란했던 고대사를 빨리 복원하여 우리의 한일관계를 더욱 명확히 밝히고, 한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과 일본 국민들 모두 인식할 때, 더욱 한 차원 높은 단계를 만들어 새로운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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