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영, 취원루는 현 중앙공원에 있었다

사라진 공주 역사 찾기와 자료수집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2015년 공주학연구원 설립부터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저장하는 공주학아카이브 구축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고순영 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때 작은 사진엽서를 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정자 사진을 보게 된다.

공주의 웬만한 유적은 다 꿰고 있는 고순영 연구원은 엽서 속 누정이 ‘취원루’일 가능성을 갖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취원루에 대해 발표하는 고순영 연구원

8월 19일 오후 3시 공주학연구원 고마나루실에서 개최된 제56회 공주학광장에서 ‘취원루를 아시나요?’ 주제로 그동안 취원루 관련 자료를 찾고 연구한 것을 발표했다.

사진 1. 사대부고 정문인 포정사 앞에서 찍은 관아대로(아래 원 표시는 식산은행(제일은행 자리)과 윗 원표시가 취원루 추정) 

고 연구원은 먼저 일제강점기 때의 흑백 사진(사진 1)을 통해 “현재 사대부고 정문인 포정사 앞에서 찍은 관아대로와 중앙공원의 누정이 취원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2003년 9월에 작성된 윤여헌 향토사학자의 공주 시내 지도(사진 2)에 구 의료원 옆 ‘취원루’ 표시와 옛사진(사진 3)의 누정(동그라미 표시)을 확인했다.

특히 사진 3의 사진 오른쪽 위 나무는 현재 영명학교 ‘역사전망대’의 나무가 확실시되며 영명학교 뒤 선교사 건물 인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윤여헌 사학자가 그린 구 의료원 옆 취원루 (붉은 원 표시)

사진 3 영명학교 선교사 건물 부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취원루.(원 표시) 오른쪽 위 나무는 현재 영명학교 역사전망대 나무가 확실시 된다.  


 이어 취원루가 나오는 첫 관찬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중종 25년」공주목 누정조 첫머리에 ‘취원루(聚遠樓) - 객관(客館) 동쪽에 있으니 옛날의 관정정(觀政亭)이다. 정자가 연못 가운데 있었는데 목사(牧使)권체(權體)가 정자를 헐고 누(樓)로 만든 것을 뒤에 목사 홍석(洪錫)이 동헌(東軒) 동쪽에 옮겨 세웠다’고 적혀 있다.

정이오(鄭以吾 1347~1434)의 관정정기(觀政亭記)에 ‘옛 못을 개발확장하고 그 가운데 돌을 쌓아 터를 돋우고 넓혀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단청을 하였으니 바라보기에 날아갈 듯 하였다’라고 적었다.

또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도 취원루기(聚遠樓記)에서 ‘나는 말하기를 이 정자의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먼데 것을 모은 것보다(취원 聚遠) 더 좋은 것이 없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사진 4 포정사에서 본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초혼사, 충혼비, 4.19학생혁명기념탑 이 있었다.

고 연구원은 또 “취원루 기록은 공산지(1859년) 누정조에 수록됐다”며 “취원루는 연정(淵亭 1412년 태종 12)에 이어 관정정(觀政亭 1415년 태종 15)으로 다시  취원루(聚遠樓 1474년 성종 5)로 변천했다”고 설명했다.

그 외 여러 기록을 소개한 고 연구원은 “취원루는 기둥 10개에 정면 2칸, 측면 3칸의 건물로 현재 중앙공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사진 4)  중앙공원은 초혼사(청국신사)와 충혼비(일제시대), 4.19학생혁명기념탑에 이어 최근 유관순 열사상이 건립되었다

발표를 들은 윤용혁 교수는 “취원루의 위치가 현 중앙공원 자리가 맞는 것 같다”면서 고순영 연구원의 발표에 힘을 실어주었다.  

공주학광장 강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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