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주례를 보아 달라 하거나 자제의 결혼 소식을 알려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난주에도 대학교 동기동창의 아들 혼사에 주례를 보러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례가 없는 결혼도 흔한 세상이라서 그런지 주례사가 길면 우선 나부터도 잘 들으려 생각 않습니다. 혹시라도 식장의 음향 성능이 아주 좋은 것이 아닌 다음에는 거의 흘려보내고 말게 됩니다.

나는 요즘 주례를 보면서 다른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두 사람이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불교적인 의미를 들려주고 두 사람이 결혼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이 답을 알기는 하되 말을 아낍니다. 나는 자답으로 행복하기 위함이라 말을 해 놓습니다. 그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주례사입니다.

가면서 족자에 작은 서예 작품을 준비해 갑니다. 오유지족이라는 네 글자를 붓으로 족자에 적고 아래로는 빛날 화자 두개를 얼굴 형태로 그립니다.

우측의 얼굴에는 인주를 써서 연지곤지 모양을 찍으면 그것이 곧 결혼하는 두 사람입니다. 아래로는 ‘웃음으로 사랑을 꽃피우자’거나 ‘사랑으로 웃음을 꽃피우자’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오유지족 네 글자를 설명해 놓습니다. 나는 오직 만족을 안다라는 의미인데 내 남편과 내 아내 내 집안은 물론 시댁이나 처가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는 일에서조차 다른 사람이나 일과 비교하지 말고 만족하고 고맙고 감사한 줄 알라 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낙관을 찍는 자리에는 결혼을 한 날짜를 적어 놓으니 일단 벽에 걸어 두고 날마다 보면서 결혼식 날을 기념하는 것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김정국이라는 이가 호가 팔여거사입니다. 기묘사화를 겪으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살아가는데 언제나 만족하고 자족하는 생활을 합니다.

‘팔여’는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아니 녹봉도 끊겼는데 ‘팔여’라고?

한 친구가 생뚱맞은 새 호의 뜻을 물으니 은퇴한 젊은 정객(政客)은 웃으며 말합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雪)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팔여’라 했다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합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 다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조선시대만 그랬을까요. 언제 어느 시절이나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살면 그가 곧 행복한 사람이요, 만국도성을 가지고도 부족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가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경에는 소욕과 지족을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고뇌도 많다. 그러나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근심 걱정도 적다. 또 욕심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각박하지 않다. 그래서 마침내는 고뇌가 말끔히 사라진 해탈의 경지에 들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소욕(少欲)이라 한다. 만약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만족할 줄을 알아야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 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遺敎經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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