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로 보는 공주이야기Ⅰ

2019년 12월 연말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평소 우리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공주의 향토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으시고, 또 공주학아카이브 시민기록활동가로서 필자와도 인연이 있으신 남궁운 선생님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 1955년부터 1994년까지 故 남궁화씨가 총 22권에 걸쳐 일상을 기록한 「보덕일지」

“고선생님, 무릉동 옛 집에 가보니 돌아가신 아버님의 일지가 있네요. 공주학아카이브를 위해 쓰임이 있겠습니까?” 필자는 무릉동으로 달려가 남궁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귀한 자료와 마주하였다.

필자 앞에 가지런히 놓인 것은 부친께서 직접 정리하셨던 기록들로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쓴 총 22권의 일지와 1985년부터 돌아가신 1996년까지 쓴 수입지출부였다. 총 10,586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특히 일지는 작은 핸드북 모양으로, 겉표지에는 부친의 호를 담은 「보덕일지(報德日誌)」라고 작성연도와 함께 정성스럽게 쓰여 있다.

▲ 남궁화씨가 수기로 일지를 직접 구성하고 작성한 1957년 보덕일지의 본문

그 내부는 또 어떠한가. 한 페이지 마다 남는 틈이 어느 한 곳도 없이 그날의 일을 빼곡히 기록하였다. 그 뿐인가. 기성품의 일기장에 본인의 일상을 담는 것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는지, 2집 부터는 어떤 선도 글씨도 박혀 있지 않는 백지형 일기장에 본인이 직접 선을 긋고 쓸 내용을 구분하였다.

그날의 계획과 주요행사를 첫머리에 두고 가운데는 일기를 썼는데, 때로는 그림을 그려 재미 뿐 아니라 그날을 일을 회상하기 쉽게 하였다. 마지막 하단에는 다짐이나 반성의 글, 명언이나 시 등을 추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일지가 아니었다.

▲ 1957년 월별동정표

일지의 서두부에 월별 일정 요약표를 시작해서 일일동정표, 그 해에 읽은 독서기나 우편물 발송기, 방문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날짜별 꿈 속 이야기와 자연관찰기도 있다. 독특한 기록이 이정도 이니, 그날의 이슈가 담긴 기사 신문 스크랩과 금전출납기록은 그저 평이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날의 계획 대비 실천평가를 ‘◎, △, ×’로 구분하여 분수로 표기하거나 하루의 수신내용과 선악행을 과감없이 기록한 것이다. 이 순간 이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하신 분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41세 시절 남궁화님

부친의 함자는 남궁화(南宮和, 1922∼1996)로 공주 무릉동(武陵洞)에서 태어나 자랐다. 22살에 옛 연기군 전의면에 사는 부인 김규화씨를 만나 결혼하였고, 슬하에 3남1녀를 두었다. 부친은 공주에서 학교를 나와 대전에 있는 대전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토지측량기사가 되었다.

당시 공주에서 단 2명만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흔한 배움의 길은 아니었던 듯 하다. 젊은 시절은 고향 공주와 서울·대전·상주·보령·울진·대구 등 전국 곳곳을 오가며 측량일을 하다가, 1985년 노년의 나이에 이르러 다시 고향 공주 무릉동으로 돌아와 살았다. 그곳에서는 석장리에 사는 동몽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훈도(訓導)로도 지냈다.

▲ 측량기사로서 활동모습

일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부친은 매우 온화하고 진중한 성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매사에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고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일기의 곳곳에 남아 있었다.

또, 측량기사라는 직업적 특성에 따라 주도면밀함과 정확성이 그의 일지에 여실히 드러나기도 하였다. 1975년 2월 어느 날, 공주 무릉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가는 노선과 교통수단을 그림으로 그려 표기하는가 하면, 강화군에서 공주를 찾아온 옛 동료에게 공산성과 박물관, 무령왕릉을 소개하였다면서 공주 역사유적 곳곳의 모습을 면적까지 함께 표기하여 그림으로도 그렸다.

▲ 꼼꼼한 성정이 보이는 일지의 내용들

또 현장시찰단에 참석한 공주 유력 관계자들의 명단까지 단 한명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이것은 필자의 매우 단편적인 관찰에 불과하여, 이 일지 안에 과연 공주사람 남궁화의 어떤 일상과 공주의 어떤 모습이 담겨 있을지 기대가 크다. 이것은 단연코 공주의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부친의 유품이기도 한 이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남궁운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차에 싣는 일지를 보며 아버님을 두 번 떠나보내는 듯하다며 동구 밖을 멀리 내다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필자의 가슴에도 남아있다.

▲ 꼼꼼한 성정이 보이는 일지의 내용들

이 일지가 세상 밖으로 잘 알려지고 우리 지역 공주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제 필자의 임무가 되었다.

(작성자 : 공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고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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