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여 년 전의 일이다. 한 교사가 출석부로 여중학생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것을 본 美평화봉사단원이 경악하며 연유를 물었다. 사정인즉슨, 전형서류 미비로 마감날 원서를 못 내게 되었던 것이다. 누누이 일렀음에도 보호자와 본인 날인이 빠졌다던가. 평소에는 말도 크게 하지 않던 담임교사가 인내심을 잃은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자가용 차는 물론 집 전화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결국 담임교사가 택시로 학생의 시골집에 다녀오고 하는 북새 끝에 간신히 마감시간에 대어 입학원서를 낼 수 있었다.  

학생을 때린 것은 물론 잘못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류미비로 제자가 진학을 못하게 될지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리된 담임의 처지를 설명해도 그는 납득을 못했다. 서류미비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게 된다 해도 그것은 학생의 잘못이고 학생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교사가 학생을 때릴 필요도 없고 때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야 그 다음부터라도 기일을 지키고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옛날 그 미국인의 말이 백 번 옳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면서도 뭔가 너무 메마르고 냉정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자의 앞길이 막히게 되었는데 어떻게 태연하고 냉정할 수 있겠는가? 불에 데어본 아이가 불을 멀리한다고? 그렇다고 자녀가 불에 데도록 내버려두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매를 들어서라도 자녀에게 큰 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것이 스승이다.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다. 라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외국인 앞에서 부끄러웠던 기억은 오래 갔다. 교사 초년시절이었던 그 당시 온순한 여학생들에게 특별히 매를 댈 일도 없었지만 그 후로도 그 때의 기억이 체벌을 의식적으로 피하게 만들었다.

요즈음 상식을 벗어난 체벌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학생체벌금지를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그전에 학생인권 침해 요소, 바꾸어 말하면 체벌규정이 있는 학생생활규정은 개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비교육적인 체벌을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소위 사랑의 매조차도 삭제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난감해 한다. 교사들은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예견하기 때문이요,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해이한 학습태도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학생들조차도 체벌금지법 이후 생길 사태를 우려하는 글들이 토론전문 사이트에 예상 외로 많이 올라와 있다.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을 행해야 한다’라는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는 단서 때문에 사실상 <교육적 체벌>을 허용한 것으로서, 제정과정에서 고민한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제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다 함은 이 단서조항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이 시점에서도 다시금 현행법 제정 당시와 같은 <교육적 체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리라고 본다. 요즈음 학생들의 질서의식이나 교실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현실적 대책 없이 교사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또한 대법원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선’에서 체벌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적용기준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의 정황, 체벌의 방법, 정도 등에서 상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법제정만이 능사가 아니다. 유청소년의 인권이 강조되는 추세에서 이미 극히 제한적인 체벌만 교육행위로 인정하는 것이 법원의 판결경향이다. 일부 물의를 일으킨 유감스러운 사건들도 체벌에 대한 국민의 의식변화에 따라 줄어들 것이고, 실제로도 학교에서 체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부언하건데, 체벌금지법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자는 것은, 체벌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당사자 즉, 교육자로서, 학습자로서의 윤리의식과 준법정신의 확립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엄격한 적용이 쉽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의 교육적 체벌에 대한 구제책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적인 체벌금지법 제정은 학생지도에 소극적인 교사만을 양산할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교육애로 가슴 뜨거운 교사들이 아쉬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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