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있다. 이에 공주를 보다 활기찬 도시로 만들었으면 해서 국제관계학과 한일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 제안을 드린다.

작금 충청도의 역사,문화 중심지였던 공주는 왜 자꾸만 쇠락해 가는가?

역사적으로 공주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몰려 살던 곳이다. 그만큼 살기 좋았던 곳이었다. 석장리 유적지를 들지 않더라도 공주는 구석기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욕의 시대를 이어왔다. 그 많은 세월동안 백제 시대에는 한 국가의 수도로써 기능한 적도 있었으니, 그 영광은 영원하리라!

공주는 잘 알듯이 백제의 수도로써 64년(475~538년) 동안 자리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때문에 공주지역에는 무령왕릉과 공산성, 대통사 유허지와 동혈사, 서혈사,남혈사 터가 확인되고 있다. 수촌리 고분 발굴은 무령왕릉 발굴 이래의 최대 발굴 성과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백제 시대 도성으로써 수많은 유적과 유물은 물론 곰나루에 얽힌 애잔한 설화가 또한 곰을 신성시 하던 고조선 사람들이나 부여계 국가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한민족의 끈끈한 민족설화가 만주의 고조선, 부여로부터 한반도의 백제 공주에까지 이어진 느낌이다. 

한편 소학동 큰길가에 위치한 효자 향덕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효(孝)의 근본을 일깨워주는 시금석처럼 버티고 있다. 향덕(向德)은 공주 출신의 통일신라시대의 효자로 ‘삼국사기’에도 올라있는 인물이다. 물신풍조에 물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불효자가 급증하는 현 시대에 엉덩이 살을 베어 부모를 공양했다는 향덕이 불효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충효 학습 자료로써 훌륭한 유적이다.

금강이 동에서 서로 굽이굽이 돌아 곰나루 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중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 수 킬로미터를 둘러가며 성으로 에워싸니 그곳에 공산성이 있어 당연하다. 공산성은 외적의 침입에도 북쪽을 흐르는 금강이 해자(垓字)역할을 해주는 자연요새요, 공산성 정상에 세워져있었을 궁궐에서 눈을 들어 북쪽을 보면 얼마저 절경이더냐?

제민천은 깊고 푸른 물결이 낭랑히 흐르고 그 맑은 물은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휴식처와도 같았으리라. 그 위 산 밑 조용한 곳에 세워진 대통사(大通寺) 또한 수많은 백성들의 번뇌와 고민을 해결해 주었으리라.

이처럼 공주지역은 역사유적으로부터 아름다운 경치에 이르기까지 역사학은 물론 미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뭇 사람들의 호기심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소재거리가 무궁무진한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점차 공주를 떠나가고 있다. 아니 이젠 공주대학교마저 보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대처로 떠나려한다.

왜? 물 맑고 공기 좋은 백제의 수도 공주를 고향사람들은 떠나려고만 하는 것일까?

이유는 모두가 인식하듯이 경제문제다.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림과 같은 유적만을 가지고는 생활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좋지만 정든 고향을 떠나간다. 아직도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생각하는 20세기의 ‘산업중심주의사고’에 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문화중심코드’로 경제문제로부터 사고까지 변화해가고 있다. 때문에 공주의 앞날은 역사,문화유적지를 어떻게 부활,복원하여 활용하느냐에 따라 백제의 도성시대보다도 더 활기찬 도시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왜 공주부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가?라고 많은 사람들은 되물을 수 있다. 그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을 두고도....
 공주를 살리려면 백제시대의 유적과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야한다. 특히 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의 5대 64년간 재임 중 부하나 외적과의 싸움에서 생환한 분은 여러 임금 중 단 한분만이 존재한다. 바로 한성에서 망한 백제 사직을 중흥시키고 백제 세력을 대륙은 물론 일본(왜국)과 동남아에까지 펼치며 호령했던 무령왕이다.

공주를 다시 부활시키려면 바로 이러한 영웅을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로 복원하고 여러 왕들이 살던 공산성 내의 궁궐을 복원하고 여러 번 왕과 비와 왕족들을 장사지냈을 정지산의 빈전을 복원하여 관광지화 하면 적어도 공주가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아름다운 금강 모래톱을 깊이 파내 모래는 모래대로 자원화 하여 세금으로 걷어 들이고 강은 강대로 강심을 깊게 하여 유람선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자.  

수많은 역사, 문화 유적을 오늘에 되살려 관광자원화 하고 멀리 일본인 수학여행객들과 일반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공주를 살리자는 제안이다.

 일본인들의 본심은 공주사랑이 대단하다. 마치 공주 생각하기를 고향처럼 친숙함을 느끼며 일생 중 한 번은 꼭 와보고 싶은 곳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고대의 한류(韓流)는 바로 공주에서 건너간 백제문화로부터 화려하게 꽃핀 아스카문화였다. 그 한류문화가 조선시대의 통신사를 거쳐 오늘날에 또다시 꽃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부는 한류의 원조도 알고 보면 공주백제의 문화전수 덕이다. 그러한 공주를 왜 일본에 선전하지 못하고 끌어들이지 못하는지 답답할 지경이다. 아니,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관광회사 팜플렛에라도 공주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역사문화도시 공주를 광고하고 선전하자. 그 광고전단에 공주대학교도 같이 들어가면 한국 유학을 꿈꾸는 많은 일본 유학생들도 공주와 공주대학교를 한번쯤 고려해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주시뿐만 아니라, 작은 단위의 지자체라던가 학교, 시민단체가 나서 우선 백제와 관계 깊었던 오사카, 나라는 물론 사가현, 미야자키현, 야마구치현, 쿠마모토현과 더욱더 적극적으로 초,중,고 학교 간 내지는 작게는 동별로라도 자매결연의 폭을 넓게 맺어서 그들이 오게끔 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성격 상 한번 인연을 맺기는 힘드나 일단 수학여행지로 공주가 결정되면 수 십 년은 끊이지 않고 올 사람들이다.

 아니, 역사,문화 유적만 제대로 복원해 놓아도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아들 것이요, 관광객이 많아지다 보면 호텔은 세우지 말라고 해도 어느 기업에서 세우게 될 것이요, 경제적으로 활성화되면 떠나라 해도 사람들은 안 떠날 것이다. 물 좋고 공기 좋고 더불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주를 누가 떠난다는 말인가?

 시 인구 줄어드는 것만 걱정하지 말고 장기 계획을 세워 공주를 역사, 문화의 고장답게 복원하여 살려간다면, 백제의 고도 웅진(熊津)은 다시 비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곰나루가 다시 멋진 나루터로 살아날 것이요, 궁궐이 다시 백제 시대처럼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주는 자연스럽게 경제도 인구도 늘어나면서 다시 화려하게 한 나라의 수도 못지않게 번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멋진 고대 한류의 원조도시로써 품격도 다시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공주를 역사 문화적으로 되살림은 한류를 복원하는 길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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