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사는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동시에 잠적하고 있다. 잠적한 역사를 밝혀진 역사 속에 편입시키기 위해 고뇌하는 사람이 역사가이다. 잠적한 공주 역사를 밝혀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아주 사소한 만남과 노력을 통하여 밝혀 낼 수도 있다. 이제 는 독자 자신이 역사가이며 동시에 역사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연전에 능인학원과 명륜고등공민학교에 관한 사실을 좀더 알고 싶어 본란에 소개한 적이 있다. 나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독자 중 한분에게서 명륜고등공민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학적부에서 그분의 함자를 확인한 다음 복사본을 들고 그 분을 만났다. 나에게는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능인학원과 명륜고등공민학교에 대하여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두 학교의 위치는 어디이며, 두 학교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였다. 서서히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분을 찾아 갔다.

우선 능인학원과 명륜고등공민학교의 위치를 물었다. 능인학원은 현재 소방서 옆 공간 즉 한일 목욕탕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명륜고등공민학교는 향교, 구 군청 뒤, 그리고 유림회관에 있던 건물에서 학년단위로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능인학원과 명륜고등공민학교는 별개의 학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경제사정이 어려워 공주중학교, 영명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명륜고등공민학교나 능인학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제보자 본인도 의당 수촌에서 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김남진 수학선생님으로, 선생님께서는 질병으로 결석한 자신을 위하여 방과 후 특별지도도 해주시고 학생들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학생들의 진로를 묻자 졸업 후 공주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육발전에 공헌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어렵게 학교를 다닌 자신들의 열정으로 교사가 되어 후세를 위하여 헌신하다 퇴임한 것이다.

제보자 본인은 명륜고등공민학교를 2년간 다니다 몸이 아파 휴학한 다음 뒤에 영명중학교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였다. 향교에서 관리하던 학교였기 때문에 가끔 향교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는 특별한 수업이 있었으며, 축문을 쓰는 요령을 배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능인학원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위치만 알고 있을 뿐 아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남아 있는 문서상에 두 학교가 같은 학교처럼 되어 있는 것은 학교 경영상 어려움으로 한번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 양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능인 학교에 대한 의문은 나의 뇌리를 복잡하게 하였다. 명륜고등공민학교가 공주향교에서 1948년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하여 설립한 학교라면 능인학원은 어떤 성격을 가진 학교인가?

능인학교의 역사를 밝혀내기 위하여 알만한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능인학교를 기억하느냐 아니 설립자 심재욱(沈載昱)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더 이상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다시 문헌 조사에 들어갔다. 공주시지(2002) 일제강점기 교육편 535쪽에서 1929년 공주군내 야학 운영 현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 능인야학원은 1926년 설립되어 마곡사에서 관할하였으며 명륜당야학은 1928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능인학원과 불교가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공주 마곡사포교당과 마곡사에 능인학원에 대하여 문의하였더니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 왔다.

이에 <공주시지>의 1929년 공주군내 야학운영현황을 바탕으로 인터넷 동아일보를 검색하였다. 1926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충남 공주불교 능인 소년회에서는 무산아동 교육을 목적하고 본정 불교 포교당에서 능인야학강습소를 설립하고 무산남녀학생을 모집하며 월사금을 받지 않는다.”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1931년 3월 29일자에는 “공주능성야학 제1회 졸업식 지난 25일 학교에서 거행”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이에 능성학원은 1926년 야학으로 시작하여 1931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다음 1953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공주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국불교근세백년사>에 의하면 1900년대 초 불교계는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강습소 및 야학을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때 밝혀진 교육사업으로는 1925년 능인포교당에서 능인여자야학회를 설립하여 첫해 학생 58명을 교육한 것과 1926년에 고성 장안사, 담양 표훈사, 김화 장연사 등에서도 빈곤으로 교육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야학을 개설한 것 등이 있다. 이때 공주 불교포교당에서 능인학원을 설치하여 150여명을 교육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1938년 5월 22자에 동아일보 공주지국장인 지헌정이 공주 유지들을 소개하며 “일반의 신망이 돈후한 사업가 심재욱”을 알리고 있어 능인학원의 설립자와 동일한 인물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보아 그는 아마도 공주에서 꽤 알려진 사업가였던 것 같다. 그러나 심재욱과 능인학원 그리고 공주포교당과의 관계는 아쉽게도 밝히지 못했다.

능인학원과 명륜고등공민학교에 관한 서류와 졸업대장을 발견하고 학교의 위치, 학교의 성격 등을 구명하였다. 능인학원은 공주마곡사포교당에서, 명륜고등공민학교는 공주향교에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하여 설립한 교육 기관이었다.

공주 역사 찾기는 사소한 사실에서부터 의문을 갖고 추적해 갈 때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 2007년도에는 자기 주변에서 공주 역사 찾기를 해보자. 공주 역사 찾기는 공주 시민의 몫이며 공주시의 자랑이 될 것이다. 잠적한 역사를 자신의 노력으로 찾아냈다는 사실이 정해년 이 한해를 뿌듯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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