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유난히 사람과 관련된 날이 많은 5월이다. 교정의 벚꽃 향내를 느낄 여유도 없이 아이들은 중간고사 준비에 밤새우고 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다른 친구들보다 좋은 내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교육인적자원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입 제도 개편의 핵심은 ‘여러 봉우리 세우기’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수험생을 점수에 맞춰 한 줄로 세우는 종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특기, 적성 및 소질에 따라 여러 줄을 세우자는 취지였다. ‘이해찬 세대’라 불리는 그 무렵 아이들은 새로운 입시 제도가 발표되었을 때 환호성을 질러 댔다. 어느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2008학년도의 대입제도의 내신과 수능 9등급화는 줄 무너뜨리기의 완결편인 것 같다. 수십 만 명의 수험생들을 1등급에서 9등급까지의 범위로만 표시하여 비슷한 수준의 대학 지원자 사이의 줄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의 의도는 일선 고등학교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들의 의지를 외면함으로써 현실과 동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또 내신과 수능, 대학별 고사 등 대학들의 다양한 전형 방법은 한 가지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만 키웠다.

2008학년도 대입 제도가 발표되었을 때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내신 비중을 전체 대입 전형의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공부만 잘 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자 학생들은 학교를 거쳐 학원, 독서실 등에서 새벽녁에 귀가하는 등 피 말리는 내신 전쟁을 하였고, 같은 반 친구들을 최대의 경쟁자로 내몰기 위해 난리 법석을 떨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목별 평균 점수를 50-60점대로 맞추고 편차를 잘 조절해야만 대학들의 내신 산정에 다른 고등학교보다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학기 중간고사 문제 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보다 더 쉽게 출제하라고 권장할 때가 언제였는데 이젠 어렵게 출제하란다. 쉽게 출제하여 평균 성적이 80점 이상이 넘게 되면 1등급 대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하여 상급 기관으로부터 질책까지 받아야 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교의 현실과는 달리 실제 대학 입시에서의 내신 성적은 수시 모집 일부를 제외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대학들이 내신 실질 반영률을 그다지 높이지 않아 전체 전형에서 내신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울대가 정시 모집에서 과목별 내신 1등급과 2등급에 같은 점수를 줘 대부분의 지원자를 같은 조건으로 만드는 등 상당수 대학들이 내신 무력화 장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내신 비중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대입제도는 대학의 의도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틀을 결정함으로써 고등학교의 현실만 왜곡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난 3월에 교육청 주관의 전국연합 학력평가가 시행되었다. 백분위와 등급만이 기록된 성적표가 제공되었지만,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지원할 만한 성적인지, 수시와 정시 가운데 어느 쪽에 치중해야 유리할 지 등 구체적인 입시 전략을 세우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사설 기관에서 시행하는 모의고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상급 기관의 경고가 내려진 상태에서, 특히 수능 성적 비중이 큰 정시 모집에서, 입시 담당 교사들의 ‘가능한 점수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원서 접수 기간엔 엄청난 눈치작전이 벌어지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각 등급의 경계선에 걸리면 한두 문제 차이로 대학에 지원조차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원하는 대학의 합격선에 맞는 등급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과, 특정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영역별로 고른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논술과 구술 성적이 대학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교과 외의 부담도 져야 한다.

논술이라는 과목 자체는 고교 교육과정에 없다. 학교에서는 국어 교사가 억지로 맡고 있는 실정이다. 논술 그 자체로도 어려운데 각 대학들이 다투어 논술 난이도를 높인다며 통합  교과형 논술의 비중을 높인다면 학교 교육은 어찌 되란 말인가?  ‘3불’이란 이름으로 각 대학과 교육인적자원부가 벌이고 있는 힘겨루기가 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입시 제도의 바뀜은 교육 주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축 늘어진 동료 교사들과 청소년들의 어깨를 보면 왜 그리 서글픔이 복받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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