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처선에 대한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살아나고 있다.

김처선은 누구인가? 연산군 때 잔인하게 살해된 내시이다. 연산군 때 죽은 이가 한 둘이 아닌데 유독 김처선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얼마 전 온 국민이 많게는 열 번을 넘게 보았다는 인기 영화 ‘왕의 남자’는 연산군을 마냥 폭군으로 인식했던 것에서 일면의 동정심이 깊게 베어나게 하였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김처선은 광대를 데려와 웃지 않는 왕을 웃기려고 노력하다 더 이상 연산군이 정신을 못 차리자 반정군이 나타났고, 반정에 동참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민하다 목 매달아 죽는 것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너무 많이 왜곡한 표현이다. 아니 영화가 관객을 위하여 허구와 과장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충신 김처선에 대하여는 요즘 말로 그를 두 번 죽이는 격이다.

김처선은 관향이 전의이다. 전의 김씨인 그는 세종 때부터 환관(내시)이 되어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까지 일곱 임금을 시종하였으며 또 직간(옳은 이야기를 하여 주는)을 많이 하여 여러 번 벌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왕들이 김처선에 대하여 신임을 하였고, 특히 세조는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하였으며, 성종 때에는 김처선이 의술이 있어 대비의 병을 치료하는데 공이 있어 상금을 받고 품계가 정2품인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가 사약을 받아 죽은 사실을 알고 폭군이 되어 많은 신하들을 죽였다. 그러기에 신하들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모두 죽는다는 사실에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동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연산군은 처용희(處容戱)라는 연회를 베풀면서 음란한 거동을 벌이자 보다 못한 김처선이 나서 “이 늙은 신이 일곱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라고 직간하니 연산군이 크게 노하여 활을 당겨 김처선의 갈비뼈를 쏘아 맞추었다.

그러나 김처선은 다시 “조선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니까? 오래도록 임금 노릇을 하실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니 연산군이 화를 내며 화살 하나를 더 쏘아 맞히고 땅에 떨어진 김처선의 다리를 잘라 버리고 일어나 걸으라고 명하자 “상감은 다리를 잘리시고도 다닐 수 있으십니까?” 하니 연산군은 그의 혀를 자르고 굶주린 호랑이에게 던지니 호랑이가 김처선을 보고 피하자 꺼내어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어 시체를 호랑이에게 주었다. 그것이 연산군 11년인 1505년 4월 1일이며, 이날부터 연산군은 매일 밤 김처선 악몽에 시달렸다.

또, 연산군은 김처선의 양자인 이공신(李公信)을 죽이고 가산을 적몰하고 그의 집을 부수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그의 본관인 전의를 혁파하여 1505년 4월에 전의현(현 연기군 전의면)이 없어졌으며, 김처선의 친족 칠촌까지 처형하였으며 그의 부모 무덤도 파헤쳐 부관참시를 하는 등 매일 죽은 김처선에게 더욱 가혹한 죄를 치르도록 하였다.

궁궐에 있는 신료와 병사들의 이름 중 김처선과 이름이 같은 사람은 이름을 바꾸도록 하였고 일력(日曆)의 처서(處暑)를 김처선의 이름이 들어갔다 하여 조서(?暑)로 고치도록 명하였고 모든 문서에는 김처선의 이름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 도를 넘어 죽은 김처선에게 온갖 방법의 벌을 주었다. 아마 동서고금 중 이토록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이도 없을 것이다.

이는 김처선이 직간한 행동이 연산군으로 하여금 마지막 발악을 하게 하였고 결국 연산군 자신이 김처선을 잊지 못하여 매일 악몽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연산군은 김처선을 부르면서 반정군에게 쫓기어 유배 길에 올랐으며 마지막 죽을 때에도 김처선을 불렀다. 중종 때에는 내시라는 신분 때문에 그의 충심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그가 죽은 후 200여 년 뒤인 영조 때에서 김처선의 고향인 전의현(현 연기군 전의면)에 충신 정려가 세워졌다.

TV 연속극 ‘왕과 나’는 김처선을 엉뚱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 진정한 충신 김처선에 대하여 역사스페셜에서는 새로운 조명을 시도하고 있다. 진정한 왕의 남자 김처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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