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륀에서 태어난 밀란 쿤데라는 소련의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고국에서의 활동이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등의 저서를 남기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여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준 소설가’라고 격찬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배경에는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의 원인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 ‘느림’은 현대인들이 속도를 통해 망각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러한 결점들은 또 다른 각색과 자기만의 여유을 통해 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가 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의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일 게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행동이 굼뜨거나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방관, 포기, 낙오하고는 다른 말이다. 오히려 정신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무한경쟁과 생존경쟁의 맹목적인 경쟁대열에서 한발자국 비켜나서 지켜보자는, 즉 삶의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길들여지고, 적응되어온 삶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삶이 보여지지 않을까.

관념 속에서 어떤 유형의 삶이 바람직하단 이야기는 하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면 많은 감동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림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답답한 현실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또 다른 방식의 삶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이라도 그런 삶에서 여유와 충만함을 느껴본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된 것이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애써서 달려가는 그 삶의 진로를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얼마나 감동적인 것일까.

수시로 변하는 교육제도와 사교육의 열풍 속에서 한국의 부모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기에 다수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조기 유학에 매우 관심을 두고 있다. 느림보다는 빠름이 자녀를 높은 봉우리에 세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국내 최초로 감성지수(EQ)의 개념을 도입한 서울대학교 문용린 교수의 자녀 교육법을 들어보면 반면교사가 될 듯하다. 그는 자녀들의 조기 유학으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조기 유학에서 30%의 성공담보다 70%의 실패담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재촉하는 요즘 학부모들의 조급증은 공부에 질린 아이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의 90%가 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의 90%는 조기 교육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넘어서는 조기 교육은 자녀의 삶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장애가 된다고 한다. 자녀를 ‘될성 부른 나무’로 키우고 싶다면 비록 느리지만 마음껏 ‘여유를 느끼면서 경험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어느 교육학자의 대뇌활동 연구에 따르면, 심신이 가장 편안할 때 학습능력을 증진시키는 알파파와 세타파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는 최고의 비결은 공부 도중 자주, 그리고 깊이 뇌를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자녀를 다그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마음의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지칠 대로 지친 뇌에 자꾸만 무언가를 집어넣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뇌를 쉬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10월 중순의 공주에서는 백제 문화제, 전국 향토 연극제, 구절초 축제 등 풍성한 문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빠름에만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느림속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문화 행사에의 참여를 권해보는 것은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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