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기운이 넘치는 오늘을 살펴보니 국조 단군기원 0000년 음력 0월 0일이옵니다. 맑은 마음으로 살펴 생각하니 오늘이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00년 되는 기일이라 후손들이 몸과 마음을 정갈히하고 한 자리에 모여 정성으로 소찬을 마련하여 제사를 올리오니 편안하신 마음으로 흠향하소서.>

이 글은 제가 잘 아는 지인이 제사에 사용하는 축문의 일부입니다. 더구나 이 축문으로 제사를 올리는 사람이 한학을 한 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제사를 올릴 때 유건과 두루마기로 격을 갖추는 한복을 입고 지내는 사람이라서 저를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 문화는 살아 움직이는 것
교육이 서당을 벗어나 학교로 바뀌고 국민들의 문자가 한자에서 한글로 바뀐 것이 일제 강점기 이후 현대 사회로 오는 변화 중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교육이 서당에서 학교로 바뀐 것은 양반에게만 공부할 수 있던 기회가 주어지던 것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을 의미하고 한자 문화가 한글문화로 바뀐 것은 말과 글이 민족의 것으로 일치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엇인가가 그 모습을 바꿀 때면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한자가 지식의 표본이던 시절에 문자가 지닌 특권을 향유해 온 사람들이 한자를 포기하는 것을 우려하고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들은 전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축문과 지방입니다.

일반적으로 전통 문화는 100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문화’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성노사(生成老死) 즉, 생겨나면 성장하고 노화되어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전통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국가 차원에서 행하는 것도 그대로 두면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전통의 문화가 사라지는 이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사회적인 변화’ 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기의 발전으로 수호적인 역할을 할 수 없어서 산성이 사라지고, 저수지를 많이 막아 농사 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냇물에 막아 농사를 지었던 보(洑)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문화의 성장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문화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여 변하기 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실을 지방과 축문에 대비한다면 축문을 쓰는 문자가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의 문자는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었는데 지방과 축문은 한자를 고집하다 보니 전통문화는 세월을 따라 변하지 못한 형태로만 남아있고 이를 행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면서 이를 말하는 사람이 고리타분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축문과 지방은 무엇인가?
축문은 제사나 고사 등에서 사용되는 글입니다. 그 글은 대부분 오늘 우리가 모여서 제사나 고사를 올리는데 정성을 모았으니 잘 받아달라는 말로 시작해서 제를 받는 분(또는 神)에게 후손들이 원하는 바를 기원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방은 쉽게 말해서 위패입니다. 가정의 기제사에서만 사용되는 지방은 제사를 올리는 것이 후손된 입장에서 누구의 제사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글이지요. 지방틀을 이용하거나 벽에 지방을 써서 붙이는 것이고, 사당에 위패를 모시는 집안에서는 위패를 놓고 제사를 올리고 지방을 붙이지 않기도 하지요. 문제는 지방과 축문이 모두 한자로 쓰이고 일정한 격식이 있는데 한자를 모르는 후손들은 그 글 뜻을 알지 못하며, 쓰는 것이 어렵고 축문을 읽어도 후손들 대부분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공자님은 예(禮)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즉 절차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마음을 다하기 어려운 한자 축문이나 지방을 고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다변화 되어 ‘관료만이 현고 학생을 면하는’ 옛날의 지방(紙榜)의 문화는 시대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습니다.

△ 이제는 한글로
문화가 변하는 것이고 변하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의미를 더해서 이제는 제사를 올리는 모든 사람이, 누구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지방을 적고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우리말로 축문을 지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는 ‘할아버지 000 신위’ 하고 적은 지방을 적어 놓고 제사를 지내면 되고, 축문의 경우 한문 축을 감안하여 ‘오늘은 서기 2007년 0월 0일 0시.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0주년되는 제일을 맞이하여 후손들이 삼가는 마음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제례를 올립니다.’ 로 시작하는 축문을 지어 올리는 것이 결코 망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축문과 지방을 미풍양속으로 말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예를 행함이고 뿌리 의식을 후손에게 물리는 일이지요. 그런데도 감히 이런 제언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속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과 제례나 상례를 이야기 하다보면 지방을 쓰는 것이나 축문을 짓는 것이 어려워 행하지 않는 경우 후손된 입장에서 조상님께 죄스럽고 아들·딸에게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상당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쓰면 쓰기 쉽고 이해가 편하고 자녀들에게는 당당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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