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낮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도란거리는 낙엽들을 스치며 산행을 하노라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자 번민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하지만, 여름의 풍성한 푸름과 가을의 그 아름답던 자태를 자연의 순환에 아무런 저항조차 없이 떨어뜨리어 자신들을 감싸 길러준 대지로 돌아가 은혜에 보답 하는 그들을 보며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다.

자연은 전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네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준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을 선사하여 마음을 곱게 열어주고 여름엔 파란 그늘로 아옹다옹 다투는 중생심을 식혀주며, 결실의 가을엔 인색한 가슴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또한, 알몸으로 누어있는 겨울의 대지는 멈춤의 지혜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나에겐 늘 고목나무이셨던 은사스님께서 입적하신지도 몇 개성상이 훌쩍 지나갔는데도 잎을 떨어뜨리는 고목의 무언설법을 만나는 계절이면 은사스님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스님의 한평생 삶은 실로 광활하고 적묵(寂?)한 대지였으며, 한 그루의 고목과 같이 우리 후학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내리신 삶이셨다. tm님께서는 평생 아무런 명예를 가지지 않으셨다. 중이 명리를 쫓아 백년을 사는 것은 마음 닦으며 하루를 사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다만, 열반하시기 몇 년 전 잠깐 동안 조계종 종단의 덕 높으신 스님이라 해서 원로의원의 자리에 추대된 것이 명예라면 유일한 명예일까? 스님께서 평생 입으신 옷은 남들이 입다버린 몇 벌 누더기가 고작이다.

상좌들이 옷을 해드릴라치면 옷은 흉스런 송장덩이 가리면 족한 것이라며 불호령을 내리신다. 스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신도를 두고 공양 받으신 적이 없으시다. 수행자가 하루세끼 바릿대 공양의 시주은혜도 너무 무겁다는 것이었다.

스님께서는 방 청소는 물론 세탁이나 일체의 일용사를 스스로 해결하셨다. 고무신이라도 몰래 닦아놓으면 내 수족이 멀쩡한데 누구에게 수고를 끼치겠느냐며 다시 닦으셔서 무안을 주어 다시는 수발을 들어드릴 마음도 못 내게 하신다.

스님은 일평생 보약 한 첩 드신 적이 없으시다. 이 몸은 무상하여 아무리 잘 먹이고 입혀도 끝내 한줌 흙으로 돌아가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먹이고 입히면 족하다 하셨다. 열반하시기 얼마 전 낙상으로 허리를 다치셔서 평생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일이 있는데 의사 진단은 영양실조로 골다공증과 각부 장기가 극도로 약화되었으니 잘 잡수시라는 처방전을 받으시고도 식생활을 여전히 바꾸시지 않으셨다.

90의 노구에도 불구하시고 대중과 함께 하는 조석예불과 공양을 한번도 거르시지 않으시던 스님께서 저녁예불을 드리기 위하여 옆에서 시중드는 시자도 없이 법당에 오르시다가 현기증으로 떨어지셔서 중상을 입으시고 21일간 병원치료를 받으시다가 가신 것이다.

늘 모시지 못한 죄책감과 이제 뵈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으로 병원으로 매일 찾아 뵈웠는데 출가입실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손을 꼭 잡으시고 바쁜 사람 오게 하여 미안하다 하시며 이제 몸을 버릴 때가 되어 이러는 것이니 너무 걱정들 말고 각자 자기 일들 잘 보고 누구든지 이와 같이 가는 것이니 열심히 정진하라 분부하시는데 존안은 오히려 더욱 편안하셨다.

스님에겐 이미 생명에 대한 애착 따위는 다 비우신 것이었으리라. 아니 우주섭리에 순응 하는 자연과 같이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는 것임을 모두에게 보이신 것이리라.

인간의 삶이 이러했다면 가히 멋진 삶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스님의 가르치심은 늘 수행에 채찍질하여 늙기 전에 생사대사(생사윤회)를 해결하라는데 귀결된다. 부귀공명이 허공 꽃이요 이 몸이 지금은 있다하지만 잠시 후에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 몸 성할 때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늘 그렇게 채찍질 해주셨다.

스님께 두 가지 죄스러움이 있다. 하나는 그렇게 간절히 채찍질 해주셨는데 아직도 생사대사를 명쾌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 곧 갈 것이니 의사선생님과 문병 오는 여러분들께 수고를 끼쳐드리지 말고 수덕사 당신께서 기거하시던 방으로 데려다 달라시는 분부를 (생각하면 어리석은 중생심이었는데)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여 병실에서 가시게 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있다.

출가본지(出家本志)를 한시도 망각한 일이 없다는 것이며, 나의 삶을 스승님과 부처님 삶에 비추어 채찍질 하는데 게으르지 않은 일이 그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승속(僧俗)을 막론한 세상이 아무리 오물스럽고 각박하게 변해도 나는 한 그루의 고목, 춘하추동과 풍한서습을 온 몸으로 감당하면서 무던히 주기만 하는 그런 고목나무이고자 하는 신념을 잃지 않음이다. 

매일매일 산행하면서 늘 밟는 그 대지요, 어제도 보던 그 나무인데 은사스님을 다시 뵐 수 없는 지금 대지는 더욱 넓은 품으로 반겨주고 고목나무는 더욱 큰 그늘로 다가온다.

은사스님! 스님은 저에게 있어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고목나무이십니다. 만물을 실어 길러내고 감싸주는 대지이십니다. 스님! 이 사바에 다시 오소서. 그리하여 더욱 밝은 빛으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벗겨 주소서.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