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여기로 시집을 왔느냐”고 묻는 소리이다. 아마 센 경상도 억양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하고 말을 꺼내면 여기까지 왔느냐고요?, 라고 웃으면서 뒤에 말을 내가 먼저 말할 정도다.

남편과 나는 서울에서 만나 올림픽이 열리던 그 전해에 이사를 왔다.

딸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도 20년이 더 된다.

공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많이 말렸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서울로 못 와서 안달인데 왜 내려가느냐, 는 것이었다. 이런 만류에는 굳이 내려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당시 남편은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본사 근무보다는 지방 현장근무가 더 많았으므로 공주로 내려온다고 해도 조금 불편은 하겠지만 크게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연로하신 어머니 혼자 계셔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저런 이유보다도 나는 그냥 공주에서 살고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공주에 대한 첫 인상 때문이다. 제일 처음 남편을 따라 공주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상한 느낌에 감싸였다.  콰이강의 다리를 닮은 금강교를 지나자  보자기에 싸이듯 무언가에 폭 싸이는 느낌이었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체질적으로 서울이 맞지 않았던 나는 이런 느낌이 오래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이런 느낌을 전에 어딘가에도 쓴 적이 있다. 이런 느낌을 어느 분에게 이야기 했더니 공주가 분지여서 그럴 것이라고 하셨다. 어찌되었던 나는 공주와 인연을 맺고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얼마 전에는 신관동에서 살다가 정안으로 이사를 했다. 집으로 오가는 길에는 밤나무를 심은 산들도 많이 있지만 푸른 솔들도 많아 왠지 공기가 맑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창문을 열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면 푸른 나무들이 잘려지고 민둥산이 되어 있고 또 어느 날 보면 산 하나가 민둥산이 되어 있고 했다. 밤나무를 심기 위해 허가를 받아 자르는 것이다.

지금 밤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타산이 안 맞아서 땅에 떨어진 밤을 그냥 버린다고 하는데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 그마저도 더 타산이 안 맞을 텐데 어쩌려고 하나 걱정이 된다. 괜한 나무만 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래도 농민들의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니 섭섭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무들이 자꾸 잘려나가고 붉은 산이 드러나는 것은 속상하고 서운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어느 날 금강교를 지나다 보니 내가 허허 벌판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공주의 구시가지 초입을 감싸고 있던 산성공원의 나무들이 다 사라진 것이었다. 

성벽은 위태롭게 드러나 있었다. 이게 뭘까? 시민의 생계를 위한 일도 아니고, 지금 전쟁이 나서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적군이 잘 보이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제서야 나는 공주를 감싸고 있는 포근하고 안온한 느낌이 강을 건너자마자 드러나는 성벽과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소나무가 푸른 것은 겨울이 되어보아야 안다는, 말처럼 나무가 베어지고 나니 그 몇 그루의 나무가 공주를 다 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담당자 조차도 그렇게 많이 나무가 잘려진 것에 놀랐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한다. 나도 집을 지으면서 순간의 선택 잘못으로 뜯어내고 다시하는 실수를 거듭했다.

이제 다시 걱정되는 것은 사태를 막기 위해 2차적으로 행해질 일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느 날 보면 시멘트벽이 둘러쳐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리가 실수를 책망하는 것은 다시 또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붉은 공주가 된 산성공원의 숲을 신중히 고민하면서 되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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