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맨 처음 코스모스였다. 그 다음 은행나무 노란 빛에서 가을이 왔다.

시퍼런 물감으로 뒤덮였던 초목 사이로, 어떻게 숨어있었을까, 노란 빛깔들이 듬성듬성 담 너머 얼굴을 내민 것이다.

그즈음 살살이 꽃 무더기 무더기가 차바퀴에 쏠려 낭창낭창 허리를 휘청일 때마다 파랗고 빨간 빛깔들이 하늘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색깔의 잔치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그렇다. 가을은 풍요와 황량함의 오버랩이다.

수확의 가을이 사과나무 가쟁이로 주렁주렁 지나더니 곧바로 황량한 벌판이 거뭇거뭇 펼쳐진다. 은행 알 떨어진 보도블럭에서 풍기는 구린내가 그리도 구수하다.

이제 배추 뿌리 뽑아낸 벌판으로 억새풀만 하얗게 날리는 그 늦가을이다. 찬바람 맞으며 총총거리는 등굣길 우리 아이들 얼굴로도 얼핏 나뭇잎 몇 개가 붙었다가 떨어진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삼월 입학식 땐 땅콩처럼 오종종하던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불쑥불쑥 자라더니 어느 새 망아지처럼 벌판을 뛰어다닌다. 집 나간 엄마 찾아 서울로 떠났던 그 아이도 문득 걸음 멈추고 운동화 끈 조인다. 축구공 날리다 다리 부러진 아이는 목발을 짚고 나타났고 ‘말 타기’하다 허리 삐끗한 아이는 복대를 찬 채 등교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황홀하다. 치마를 내리며 쪼그려 뛰기 하던 우리 아이들 새벽바람 가르는 소리가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늦가을 모두들 사라진 하굣길, 금세 어두워진 운동장 어디쯤 후미진 구석에서 사춘기 계집아이들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린다. 포플러처럼 대궁 세우며 어른이 되는 소리 들린다. 그 늦가을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우리들은 장년의 평교사가 되었다. 오가는 길목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 하고 놀라면서 귀밑 서리 허옇게 내리는 중이다. 형광등 아래 창백하게 글자 수 맞추던 사내아이도 어느새 두터운 원서를 낀 채 학자풍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첫 사랑 얘기해주세요.” 발그스레 조르던 소녀가 학부형으로 교무실 찾아 입학상담 카드를 내민다.

술 취한 선생 논두렁밭두렁 비틀거릴 때 경운기로 실어다 준 중년의 사내는 그 옛날 사고뭉치 주먹 잡이 그 아이다. 빨간 색 비디오 보다가 귀싸대기도 맞으면서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랬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세탁소나 할인마트 주인이 되고 버스 기사나 컴퓨터 수리공이 되고 관료나 치과의사가 되고 그리고 선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옛날 총각 선생은 장년의 평교사가 되었다. 팔팔하던 근력이 머리카락 사이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등 굽은 허리로 게시판 못을 박으며 세상을 감싸려하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울울 청년의 세월 단칼에 날려버리고 자리를 찾는 우리 아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의자를 내줄 수 있는가? 아니면 아직 건재한 몸으로 의자에 버틴 채 책임과 의무를 다할 힘이 남아있는가? 콜라병도 단칼에 따던 강철 이빨 사뿐히 잊고 이제 토종닭 백숙까지 이쑤시개로 야금야금 발라먹는 세월의 무상함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세기 막바지 한반도의 격동기를 보내면서 달아온 주렁주렁 달아온 참교육의 훈장을 나뭇잎처럼 훌훌 털어낼 수 있을까? ‘전교조는 왜 이적단체인가’ 라며 각다귀 떼처럼 달라붙던 속 빈 현수막들도 가시철망 걷어내고 안쓰럽게 다독일 수 있을까? 그래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교사는 때로 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발톱에 긁힌 상처도 음미하는 여유를 지니는 게 참교사요 시인이다. 그렇게 맨살과 그림자까지 온갖 물상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콩나물 크는 소리, 겨울나무들 옷 벗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간극 메우려 씨 뿌리는 착한 스승들 발자국 소리도 차곡차곡 스크랩한다. 비탈길 시국에 찢어진 상처 아프지 않다면서 울먹이는 소리 들린다. 늦가을 비가 내리고 나면 언제나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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