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망합니다.’
 그 황당한 현수막 제작팀이 서울시 교육계 수장으로 입성하면서 사태가 더욱 급물살을 탔다.

참교육 슬로건을 파렴치 집단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쓰나미처럼 밀려들더니 급기야 전교조 교사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어리둥절 카드를 내밀었다.

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아이들 성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한번 해보고 싶은 대목이다.)

단순할수록 자기 확신을 공격적으로 규정한다. 4.19는 ‘데모’가 되었고 역사교과서가 필자의 동의 없이 내용이 수정되는 즈음이다.

막연한 소심증들이 현실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에 즈음하여 교사들에게 쌍팔년도식 소나기 징계가 쏟아진 것이다. 정상용, 최혜원, 박수영, 송용운, 설은주, 김윤주, 윤여강 선생님이 그 이름자다.

온갖 물고기가 혼재된 공간에 섞여 헤엄치던 교단의 일급수 열목어들이 저수지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정상용 선생님의 가슴에 가장 큰 대못이 박혔다. 보수언론은 '남의 자식을 팽개치고 자기 자식만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절묘한 활자의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니의 딸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일제고사 선택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고 혼자 빠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시험을 보았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그런 항변이 색안경 앞에선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 출근길,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을 가진 설은주 선생님을 부축하는 두 명의 여교사는 쫓겨난 선생님을 부축하느라 정작 즈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다. 브레이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글귀가 겹치면서 눈동자에 이슬의 폭포가 흐른다. 그 실루엣을 안주 삼아 벗들이 취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보다 먼저 울었다.

문득 5공화국 청년 시절의 스크린이 겹쳐진다. 이십대 낭만주의자였던 나는 소박한 마음으로 교단에 섰었다. 칠판은 우렁각시처럼 뒤를 보살펴주면서 밥과 술을 주었다. 그랬다. 나는 단지 글쟁이 교사로 정년퇴임까지 칠판 앞에 서겠다는 그런 꿈을 꾸었었다.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따라주었고 쨍그랑쨍그랑 유리알 깨지는 소리에 취해 날마다 행복했다. 시국은 흉흉했지만 그런 여파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80년대 초반, 수시로 터지는 브라운관의 시국 사건들을 접하면서 ‘어쭈구리 또 엮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 남의 일들이 느닷없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 이름을 TV에서 먼저 보았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몇몇은 구속되었고 몇몇은 피신해 다닌다는 속보였는데, 내 이름자가 후자에 섞여 있었다. 기실 해직 사유도 당시에 흔히 있었던 ‘사립학교 교사 채용과 기부금’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80매였다.

신 새벽 소도시 경찰서에 끌려가면서, 그 내용이 허위사실 유포이며 그래서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는 흐름도에 쏠려가기 시작했다. 심약한 나는 날마다 상처받았다. 나를 찾아온 학생들이 야단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슴이 아프다’라는 문구의 ‘육체적 고통’을 새삼 확인해야 했다.

2008년 겨울 칼바람 해직 선생님처럼 “얘들아, 선생님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게”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때 나는 “얘들아, 너희들 옆으로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구나” 라고 말해서 단발머리 소녀들이 전봇대 끌안고 울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현관문 나설 때마다 다시 의자를 되찾겠다며 허리띠를 조여매었던가.

그리고 강산이 두어 번 바뀌었다. 그 학교 담장 밖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의 인사 말씀을 들으면서 담쟁이 넝쿨을 쥐어뜯던 사연도 아득한 기억이 되었다. 세상이 아파서 내가 아프던 ‘70-80’의 시국이 쏜살같이 지났고 핸드폰이나 디지털 불빛 번뜩거리는 자본주의 온난화 시대가 도래 했다.

‘루카치의 별을 보던 마음’ 쓰다듬던 청년교사의 머리로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재단사나 노동자가 되고 주부와 경찰과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장년의 평교사 자리에서 여전히 슬리퍼 굽을 치며 교실을 연다.

이제 칠판 앞에서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그냥 쳐다만 봐도 예쁜 꾸러기들이 큰아버지 같은 국어 선생 머리 꼭대기에 널따란 놀이터를 만든다. 국어책 뒤에 숨어 온갖 부스러기 깨물다가 스트레스 풀듯 한 마디 던진다.  

 “선생님은 왜 교장 선생님이 못 되셨죠?”
 “우이 씨. 세월이 가면 그냥 되는 줄 알았겠지.”
 ‘누님 같은 꽃’이 된 옛 제자의 아들이 어깨를 친다.

장년의 평교사는 사춘기 머리를 벅벅 긁어주며 주머니 속 씨앗을 만지작거린다. 은행나무 나목 사이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휑’ 하니 사라진다.
·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