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삼거리 벽화(전남 신안군)
기동삼거리 벽화(전남 신안군)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며 나이 든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1928-2019 벨기에)가 만든 마지막 영화이기 때문이다. 베레모를 쓴듯한 머리 모양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사람들과 얘기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영화에서 내내 말한다.

‘아마 88세인 바르다와 나는 서른셋(영화 속 JR의 나레이션)’인 JR은 큰 카메라 렌즈 사진이 눈에 띄는 차를 타고 달린다. 트럭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즉석카메라 부스처럼 5초 후에 대형 사진이 출력된다.

밀밭을 달려 시골 마을, 농장, 곧 사라질 탄광 마을, 큰 공장, 컨테이너 부두, 마을식당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얘기한다. 달리는 차에서 그는 손을 들고 풍경을 가리며 주름이 잘 보이게 손을 확대하고 또 손은 희미해지고 풍경이 또렷하게 보인다.

영화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얘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출력을 해서 벽에 붙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을 벽에 붙이면 주인공은 감동하고 가끔 울컥하기도 한다.

신안 둔장 마을 사람들 작업을 하며 찾아본 영화다. 신안에는 얼굴로 벽면을 장식한 벽화가 여럿이다. 내가 작업하려고 마을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 얼굴 벽화를 얘기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주름진 얼굴을 그렇게 크게 그려 놓은 게 흉측하다는 말이다.

그나마 기동리 벽화는 났다는 말도 한다. 내가 하는 작업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서로 얼굴을 익히는 시간을 갖고, 허락을 받고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다. 짧은 시간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사진을 찍을 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처음 간 사진관이거나 급할 때는 즉석 사진, 친밀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요즘은 포토샵이 있어서 그나마 사진을 손봐 주니 좀 나은가 싶지만 어색한 사진이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진 속 모습은 내가 아니다. 낯선 얼굴이 거기 있다.

신안군 암태면 기동마을에 사는 문병일(78세), 손석심(79세) 부부의 얼굴을 그린 담장 벽화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천사대교를 건너 구불구불 달리다 보면 삼거리 벽화가 정면에 보인다. 왼쪽은 김환기 생가가 있는 안좌도, 박지도 길이고 오른쪽은 무한의 다리가 있는 자은도 방향이다.

신안을 처음 방문했을 때, ㅇ예술감독은 자은도 가는 길에 멋진 벽화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운전을 하며 열심히 벽화를 찾았고 삼거리 벽화를 보는 순간 아 여기구나 하며 차를 세웠다.

이미 그곳은 많은 차가 갓길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차례를 기다린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도로를 넘나든다. 덩달아 그 앞에 컨테이너 카페와 만두, 찐빵집은 사람들로 붐빈다.

편안한 미소로 맞이하는 이 부부의 대문 앞에는 '천사의 보금자리'라고 신안 축협 문패가 있다. 파마머리처럼 보이는 동백나무에는 빨간 동백꽃 조화가 박혀있다. 재미있는 벽화 덕분에 모두 웃는다. 지금은 동백꽃이 피었겠다.

<바르다가 사랑한 사람들>에 주인공은 특별히 치장하지 않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바르다는 어떻게 찍는 것이 좋을지 그들과 얘기한다. 먼저 이런저런 일상을 공유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나이가 드는 것은 주름이 많아지고, 힘이 약해져서 일을 욕심껏 하지 말고 조금씩 쉬엄쉬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봄이다. JR을 따라 느릿느릿 걷는 바르다를 생각하는 봄이다.
눈이 좀 안 보이고, 단어가 빨리 생각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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