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경 [노랑] 53x72.7cm
안혜경 [노랑] 53x72.7cm

제주도에서 일 년 살아보기를 하던 친구가 작년 봄에 우리집에 왔다. 정안휴게소에 도착한 친구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은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개나리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유채꽃을 보려고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그는 유채꽃을 보며 무엇인가 허전했고 그것은 육지 어디에나 너무도 흔하게 핀 개나리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

개나리가 참 예쁘다고……. 노란 유채꽃 밭을 보며 봄을 맞이하는 제주도, 더 일찍 피는 매화나 벚꽃도 있지만 우리는 노란 개나리를 보며 봄을 맞는다.

남쪽 땅 제주에서 먼저 피고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며 북상하는 개나리가 제주에 없을 리 없지만 천지가 유채꽃이라서 개나리에 눈이 가지 않는가 보다. 도시에 살 때는 개나리를 보며 예쁘지 않고 오히려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을 텐데 그때 마음이 넉넉하지 않았나보다. 흔하다는 이유로 홀대하며 멀리 제주도로 유채꽃을 보러갔으니 지금 가만 개나리를 보면 미안한 느낌이 듬뿍 든다.

산골마을 쌍달리는 봄이 늦게 찾아온다. 어느 날 북방산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우렁차고 커지기시작하면 우수, 경칩이다. 연못에는 개구리, 도롱뇽 알이 자리를 잡는다. 밤하늘에 오리온자리도 동쪽에서 남쪽으로 이동 한다.

얼어있던 땅이 풀리며 꽃밭에서 수선화 잎이 새부리처럼 뾰족하게 올라오고 숲에는 노란 복수초가 제일 먼저 핀다. 한눈을 팔면 복수초는 구경하기 어렵다. 보라색 선까치꽃, 꽃다지, 냉이가 양지바른 땅에서 올라온다.

잠자던 나무는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뻗어 물을 끌어올린다. 숲은 여린 연두색으로 시작해서 매일매일 짙어진다. 

쌍달작은도서관의 개나리 울타리는 아직 꽃필 생각을 하지 않고 봉우리만 달고 있지만, 해 뜨는 시간이 빨라지고 저녁은 더디게 찾아오니 그만큼 하루도 길어진다. 게으른 농부도 미니 관리기로 밭을 갈고 찾아오는 봄을 맞이한다.

오랜만에 산을 내려와 공주시내로 시장구경을 간다. 금강변에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물오른 버드나무 군락지는 연두색으로 저 멀리 하늘거리고 여긴 벌써 봄이다. 개나리가 반갑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빠르게 휙 지나가는 개나리를 본다.

현재에서 과거로 또는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따뜻한 봄볕 때문에 졸음에 겨워서인지 노란색을 보며 나른하고 몽롱해진다. 운전을 하고 있지만 꽃으로 밥을 지어 먹으며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곧게 뻗은 도로 위를 달려서 오지 않고 구불구불한 산길, 바닷길, 한사람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돌아서 쉬엄쉬엄 구경하며 찾아온다. 꽃샘추위로 몇 번 우리를 애타게 한 뒤, 어느 날 슬그머니 옆에 와있다.

개구리는 더 우렁차게 운다. 쌍달작은도서관에 걸린 개나리 그림을 보며 따뜻한 봄날을 생각하면서 ‘지금이 내겐 봄이야’ 혼잣말을 한다.

개나리가 활짝 핀 길을 천천히 걷는다 (걸어봄)
길가에, 강가에 다닥다닥 모여 있는 그들에게 지긋이 눈길을 준다 (바라봄)
그에게 봄을 데려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말해봄)
살짝 봄바람, 그에게서 향기가 난다 (맡아봄)
부드럽게 내게 속삭인다 (들어봄)
그로인해 나의 온몸이 뜨겁게 반응한다 (느껴봄)
이렇게 봄, 봄, 봄이다.

이제 개나리는 흔한 꽃이 아닌 귀한 꽃이고, 그렇듯 평범한 우리도 귀하다.
아! 개나리는 공주시의 꽃이기도 하다.

시 하나 끄집어내었다. 누구의 시인지 개나리꽃을 보며 짐작해보자.
힌트는 공주에 있는 풀꽃문학관의 주인장.
   
개나리 꽃대에 노랑불이 붙었다. 활활
개나리 가늘은 꽃대를 타고 올라가면
아슬아슬 하늘 나라까지라도 올라가 볼 듯
심청이와 흥부네가 사는 동네 올라가 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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