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레이턴  Lord Frederic Leighton, 영국1830년~ 1896년oil on canvas 100.3 x 161.3 cm 1878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프레더릭 레이턴 Lord Frederic Leighton, 영국1830년~ 1896년oil on canvas 100.3 x 161.3 cm 1878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운전 중 이었다. 맞춰둔 클래식 FM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 이름이 나온다. 미술사에 그리 중하게 오르내리는 작가가 아니다.

그림은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의 아리아, 자기를 버리고 떠난 테세우스를 추억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나온다.

그림 설명과 함께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이야기도 곁들이고 레이턴이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설명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톺아보기.

프레더릭 레이턴 가족은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유럽을 여행하며 생활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조금씩 그림을 배웠던 레이턴은 피렌체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로마 시절의 데뷔작이 영국 왕실에 팔리면서 유명해졌다. 후에 영국에 돌아와 런던 로열 아카데미 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화가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영국 화가들 중 최초로 귀족 작위를 받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이다.

그는 역사, 종교, 신화 그림으로 유명했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인물화를 그렸다. 음악, 패션, 외국어에  관심이 있었고 훈남이었던 그는 인기 있는 화가였다. 1996년 서거 100주년 기념 전시가 열렸고 영국인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작가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제작된 ‘실타래 감기’를 보자. 한 건물의 테라스에서 두 여자가 조용히 실을 감고 있다. 왼쪽에 앉아 있는 여인은 양손에 실타래를 끼고 부드럽게 손을 놀려 실이 잘 풀리도록 하고 있다.

오른쪽에 서서 실을 감고 있는 여자는 어린 소녀다. 실로 연결된 이 두 여인은 어떤 관계일까? 어린 시절 뜨개질을 준비하던 엄마를 도와 내가 했던 일을 소녀가 하고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잘 엉켰는지 수시로 엄마는 실타래를 내려놓고 실을 풀어야했다.

그 실은 원피스, 스웨터, 바지, 장갑, 목도리가 되었고 작아지면 다시 풀어서 또 다른 옷이 되었다. 예전에는 실을 잣고 직물을 짜는 일은 집에서 여성이 해야 할 당연한 일상이었다. 실을 감고 있는 두 여인은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중이다.

레이턴은 1867년 그리스의 섬 로데스를 여행하다가 어느 하얀 집의 테라스에서 본 장면을 스케치했다. 10여 년 후 그는 모델과 날씨 등을 조정해 유화로 그림을 재구성했다. 인물은 대리석 같은 고운 피부, 순백의 드레스, 여신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전경에 배치된 건물 너머 배경에는 구름이 움직이는 지중해 해안, 잔잔한 바다를 가로로 배치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을 보듯이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사소하고 친숙한 일상이 영원한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로 느껴진다.

왼쪽 여인은 표범 가죽을 깔고 앉아있다. 표범과 실타래를 가진 그녀는 아리아드네, 그녀의 손에서 실은 거의 다 풀렸지만 옆에 놓인 바구니에는 다른 실타래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 여인이 평온을 찾은 아리아드네라면 오른쪽에 서서 실을 감고 있는 소녀는 어린 아리아드네, 운명의 끈은 아이에게 이어지고 붉은 천을 두른 소녀는 성장하면서 혼돈에 빠져들 것이다.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삶, 인생에서 실타래는 차례차례 다가온다. 때론 한꺼번에. 아리아드네에게 테세우스를 지나 디오니소스가 오듯 인생에서 인연과 이별, 단절은 또 다른 인연을 불러온다.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 우리나라의 전통혼례에 등장하는 청실홍실, 동화에 나오는 물레와 실, 실로 연결되어 있는 그림 속의 두 여인,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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