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2천 년, 인물과 사건

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금강 7-금강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

11. 백마강에서 백제문화제가 시작되다, 신맹선

1955년 4월 부여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부소산성에서 ‘백제대제’를 지내고, 백마강변에서는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수륙재(水陸齋)를 거행한다.

삼충사를 지어 백제대제를 지내자는 것을 발의하고 추진한 것은 신맹선 등 6인의 부여 사람들이다.

이른바 ‘백제문화제를 기획한 원년 멤버’인데, 이석태, 노재호, 김규태, 신맹선, 이석우, 홍경식이다.

4월 18일 백제대제의 역대제왕 추모위령제를 막을 열었고, 대제의 마지막날 22일에는 2만 여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구드래앞 백마강에서 삼천궁녀 위령제(수륙재)를 올렸다.

이것이 백제문화제의 출발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역의 예술문화 진흥을 도모하려 했던 진주의 ‘영남예술제’와는 근본적인 성격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수륙재를 거행할 때는 백마강을 운행하던 각종 선박이 함께 모여 특별한 풍경을 연출하였다. 백제 망국의 한을 달래는 제의 이외에 별다른 행사는 없었지만, 행사기간에는 전국 도처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직 6.25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어려웠던 시기이다.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백마강의 수륙재에서 백제문화제가 출발하였다는 것은 백제문화제가 갖는 제의적 성격과 한(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 대제’를 시작하면서 3충신(계백, 흥수, 성흥)에 대한 제사의 필요성 때문에 부소산성에 ‘삼충사’를 건축하게 된다. 1957년의 일이다. 부소산성의 삼충사는 구드래 백마강변과 함께 백제문화제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55년 4월 22일 백마강에서 거행된 수륙재(제1회 백제문화제)
1955년 4월 22일 백마강에서 거행된 수륙재(제1회 백제문화제)

1955년 ‘백제대제’에서 출발한 백제문화제는 곧 종합문화축제로 확대되었다. 농악・그네・활쏘기・씨름 등의 민속축제가 더해졌고, 시조대회・백일장・백제공주선발대회・가장행렬 등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개최 시기도 처음에는 4월이었으나, 1957년 제3회 ‘백제대제’ 때부터는 10월 초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65년 10월 제11회부터는 보다 종합적 성격을 갖는 ‘백제문화제’라는 이름을 택하게 된다. 부여에서 개최되던 백제문화제가 공주와의 동시 개최로 전환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백제문화제의 특성의 하나는 이 축제가 백제가 안고 있는 한(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백제문화제는 축제이면서도 제의행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백제문화제는 2022년 제68회의 역사를 축적하였고, 2023년에는 확대된 규모의 ‘대백제전’을 예정하고 있다.   

1955년 ‘백제대제’의 개최를 주도했던 창산(蒼山) 신맹선(辛孟善, 1904-1983)은 묵매(墨梅)에 능한 부여의 서화가이다. 1924년 해강 김규진이 운영하던 경성서화학원을 수료하고 1958년 부여미술동호회를 조직하는 등 고향 부여에서 평생을 활동하였다.

유홍준의 부여문화원 기증 유물중에는 1963년에 그린 신맹선의 ‘백강 매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경여가 청나라에서 가져왔다는 백강마을 부산서원 앞의 그 매화인데, 근년에는 임옥상 화가의 ‘부여 부산의 동매’가 특별하다.

신맹선은 2015년 제61회 백제문화제 폐막식에서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의 1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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