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예술이라고 지칭하는 창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은 어느 분야를 불문하고 늘 최초의 시작점을 향한 의문을 던진다. 

공주시 석장리박물관 입구 전경
공주시 석장리박물관 입구 전경

특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그러하다. 지구 어딘가에 숨어 있는 최초의 증거들이 새롭게 발견될 때마다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의 짐작보다 탁월하며, 때로는 그 탁월함 때문에 발견 당시에는 조작이라는 의심을 면치 못하기도 한다. 

구석기 예술이 그러했다. 처음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을 발견한 사우툴라Marcelino Sanz de Sautuola경은 대단한 발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기죄로 고소당했으며 죽을 때까지 그 불명예를 벗지 못했다. 

그만큼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예술적 완성도는 뛰어났으며, 당시 선사인에 대한 인식, 소위 ‘털북숭이 원시인’이라는 편견은 확고했던 것이다. 

지금도 간혹 우리는 선사시대 예술을 원시예술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원시原始라는 단어는 은연중에 선사시대 예술은 지금보다 더 불완전하고 원초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알타미라 동굴 이후 발견된 수많은 구석기시대 예술은 현대 예술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술적 완성도와 영감을 보여준다. 

2023년 5월 석장리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 예술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수만 년 전 사람들의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과 탁월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 예술가들이 깊은 통찰력과 감수성을 빛나는 솜씨로 기록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기획전을 개막했다.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학예연구사라면 누구나 ‘다음 전시는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늘 머리 한편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생각은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순간에도 늘 따라다닌다. 2022년 특별기획전을 개막하고 다음 전시를 고민하고 있던 중 석장리박물관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는 독일 쪽에서 선사시대 동굴벽화 전문가를 소개해 주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석장리박물관은 최초로 한반도(비록 남한으로 국한되지만)의 구석기시대 존재를 밝힌 사적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중에게 구석기시대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 매년 구석기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해 왔으며, 외국에 가지 않고도 석장리박물관에서 세계의 구석기시대 문화를 볼 수 있도록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등 국외 구석기 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한 전시에도 힘써 왔다. 

마침, 코로나로 멈춰야 했던 여러 대면 활동들을 재개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대면으로 이루어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석장리 구석기 축제(매년 5월 5일 석장리유적에서 개막)도 코로나 이후에 열린 충남지역 첫 대면 축제로 성공리에 마친 상황이었다. 코로나로 축소되었던 국외 교류를 통한 전시를 다시 시작할 시점에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즉시 그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선사시대 예술품을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해 선사시대 동굴벽화 연구가이자 재현전문가인 Ruth Hecker와 전시를 위해 재현할 수 있는 동굴벽화와 조각품들을 선정했다. 

‘선사 예술가’ 전시 모습
‘선사 예술가’ 전시 모습

독일 Ulm 박물관의 ‘사자인간’ 복제품도 대여했다. Ulm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홀레슈타인 슈타델Hohlenstein Stadel 동굴의 ‘사자인간’은 약 4만 년 전 후기구석기 초기의 조각상 중 가장 크고 신비한 예술품으로 상반신이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 상상 속 이미지를 표현한 첫 증거로 유명하다. 

또한 앞선 전시에도 도움을 주었던 국립 베를린 선사박물관 Ewa Dutkiewicz 박사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연구자들과도 연락이 닿았다. 이탈리아 후마네Fumane와 달메리Dalmeri 유적의 예술품을 해당 유적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인 Ferrara대학교의 Marco Peresani교수와 MUSE 과학박물관의 선사분야 과학/기술 담당자인 Elisabetta Flor의 도움으로 해당 지역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제작할 수 있었다. 후마네 유적의 돌에 그려진 인물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거론되는 유물이다. 

‘구석기시대 예술품’으로 전시 주제가 정해졌지만, 실제 전시로 실현되기까지는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야 했다. 특히 석장리박물관의 전시 취지와도 일치시켜야 했다. 구석기 전문 박물관인 석장리박물관 학예연구사로서 전시 기획을 담당하게 되면서 가능한 다음 두 가지를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와 조각상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와 조각상

하나는 구석기인들은 원시적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구석기인들의 뛰어난 기술과 문화를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구석기시대 문화를 잘 보여주기 위해 유물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인간의 행위’를 같이 전시하는 것이다. 

인류가 첫 시작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후기구석기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으로 인지 능력과 사고력, 상상력과 창의력, 생각한 바를 손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 습득한 지식을 공유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할 수 있는 언어와 기록(예술),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 생활 등 인간다움의 원형이 모두 완성된다. 

예술은 이것을 보여주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였다. 그리고 그 행위의 주체인 사람에 포커스를 맞춰 ‘선사 예술가’라는 전시 제목이 탄생했다. 

구석기인들이 남긴 그림이나 조각품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세심한 관찰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때로는 현대 미술을 보는 듯한 세련미를 보여주기도 하며, 현대 미술의 상징인 추상적인 기호들도 이미 그림으로 표현한다.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동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들의 습성을 파악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그 본래의 목적을 초월해 인류에게 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게 했다. 

4만 년 이전부터 구석기인들이 남긴 예술품들은 - 구석기인들이 예술을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로 여겼는지와는 별개로 - 외부 세계를 인지하고, 이것을 내면에 투영해 새로운 창조물로 재탄생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알타미라 동굴을 방문한 피카소가 동굴벽화 속 생생한 들소와 야생동물에서 느낀 강렬한 감동을 ‘알타미라 벽화 이후의 모든 미술은 쇠퇴했다'는 말로 표현했을 정도로 구석기인들은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동굴벽화를 재현하고 있는 Ruth Hecker
동굴벽화를 재현하고 있는 Ruth Hecker

이번 전시를 위해 Ruth Hecker는 15점의 동굴벽화와 60여 점의 조각상을 재현했다. 구석기시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전문가에 의해 재현된 유럽 전역의 동굴벽화들은 동굴 벽의 모양과 질감까지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그림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선사인들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현장에서 보듯 생생히 느껴볼 수 있다. 더불어 영상을 통해 선사 예술품의 재료와 제작 방법도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진행되며 5월~10월까지 매달 1회 선사 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별기획전 연계 체험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된다. 

‘선사 예술가’ 체험 프로그램 참여 모습
‘선사 예술가’ 체험 프로그램 참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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