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인이라면 가카라시마 방문을 강추

2023년 제22회 무령왕탄생제에서 백제세계유산센터  이귀영 센터장의 인사말 장면
2023년 제22회 무령왕탄생제에서 백제세계유산센터 이귀영 센터장의 인사말 장면

지역사를 공부하며 공주시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는 내가 아직도 무령왕이 탄생한 곳에 가보지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매번 제때 신청하지 못해 놓쳐 기회만 엿보던 이번 마지막 신청자가 되어 턱걸이로 참여하게 되었다. 

디자인된 답사 이름표
디자인된 답사 이름표

답사는 5월 31일부터 6월 6일로 4박 5일간의 일정. 일본 가라츠시 가카라시마 섬의 무령왕 탄생지를 방문, 탄생제에 참여하는 게 답사의 최종 목적이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주제가 답사로 마련되어 있었으니 바로 일본의 세계유산 유적들이었다.

‘천주교’ 유적지, 그리고 ‘군함도’였다. 대학원 시절 내포 천주교 유적 답사 때 보았던 천안 성거산, 보령 갈매못 등 박해 유적들은 내게 큰 여운을 남겨 주었다.

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담당자로서 독일 본 유네스코 회의장에 참석하였고 무령왕릉과 군함도 등재를 지켜 봤던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 아니면 언제 가 볼 수 있을까.

이번 답사는 코로나로 4년만에 진행되었으므로 네트워크 회원들도 감회가 새로워보였으며, 일본 회원들에게 줄 선물   보따리들은 그들의 아쉬움과 설레임을 말해주는 듯 했다.  

모두 31명의 답사단은 새벽 4시, 동이 터오르기 전 어두운 무령왕릉 왕릉원 주차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무령왕릉이 바로 뒤에 있는데 무령왕께 잘 다녀온다고 마음 속으로 인사드렸어야 했었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하며 후회해 본다. 

아침 6시 조금 넘어 도착한 인천공항에는 역시 수 많은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었고 그 틈새에서 금강뉴스 신용희 선생님과 연트레블 회사 직원들이 얼싸안고 인사하며 반가움을 만끽하셨다. 아마도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듯 보여 마음 편안한 일정이 되겠다 예상했다. 

출발하기 전 검색해 본 일본 날씨는 온종일 비가 내리고, 어딘가에는 태풍이 향하고 있다는 겁나는 소식들 뿐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는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 되 일정을 마칠 때까지 버스 안에서 시작된 무령왕 노래 교육. 무령왕 탄생제에서 노래와 춤을 뽐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31명의 답사팀들은 각자 방식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답사가 끝난 다음날 아침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니리무세마를 흥얼거릴 정도.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나정희 선생님의 입담과 노래, 춤 실력에 5일 내내 계속 감탄하며 과연 나선생님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야메시 '무령왕을 생각하는 모임'과의 교류회
야메시 '무령왕을 생각하는 모임'과의 교류회

버스가 이동하며 본격적으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첫날 일정은 일본 무령왕 교류회 인사들을 만난 후 오노죠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 버스가 내린 곳은 조용한 일본 시골마을의 한 고급 식당이었다.

우리는 무령왕 일본 교류회 네분을 만나 즐겁고 맛있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무령왕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친절했으며 우리는 그들과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교환하였고 일본 네트워크 회원을 처음 뵙고 약간은 긴장했던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두 번째 답사지는 오노죠 박물관. 박물관을 들어가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오노죠市 시장과 언론, 박물관 관계자 시민들이 입구서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너무나 편한 차림이었던 내 모습을 보니 약간 미안해졌다. 정중하고 친근하게 행사가 진행 었는데, 답사팀의 대표인 윤용혁 교수님과 오뇨죠 시장은 서로 선물을 교환하였다.

수 십 군데에서 촬영자들이 모여들며 또 한편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고 있었다. 나는 이때 공주시에서도 관계 공무원이 함께 했다면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교류가 훨씬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오노조시장의 인사말 장면과 취재진들
오노조시장의 인사말 장면과 취재진들

오노죠 박물관은 ‘시민박물관, 역사, 마을, 사람, 마음이 이어진다’라는 특별한 표어를 내건 박물관이다. 지역박물관은 시민과 함께 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박물관은 마치 그 벽이 높고 폐쇄적일수록 박물관답다는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운영에서 지역민과 상생이 중요함을 항상 생각하는 나에게 그 표어들은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곳에서 오노죠 박물관과 공주 대학교 박물관의 교류 회의가 진행되었다. 역시 시민의 박물관이란 부제 답게 직원보다 주민으로 구성된 박물관회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했다.

회의 탁자를 두고 양국 박물관 회원들이 인사와 의견을 교환하였다. 공주대학교 박물관회 회장님은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인사말을 일본어로만 이야기하셨고 통역을 도맡았던 나정희 선생님이 오히려 우리에게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시는 유쾌한 상황이 벌어졌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아쉬운 인사를 하고, 우리의 버스는 숙소가 있는 나가사키로 향했다. 나가사키 항 근처 숙소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고 그 다음 날 가게 될 오우라 천주당과 거의 붙어 있었다.

낯선 곳임에도 아침 밤으로 산책하기 참 좋았다. 도착 날 밤 재밌는 일이 있었다. 같은 방을 쓴 홍제연 충남역사문화원 부장님과 밤 산책을 즐기다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한국인 박상언씨를 만났는데 그는 논산 강경 김대건 고등학교 출신의 천주교인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내일 방문할 오우라 천주당 전시 관련 분야에서 일하며 나가사키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연한 만남에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맥주 한잔을 나눴고 멀리 두고 온 충남이야기를 이어가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두 번째 날 오우라 천주당은 걸어서 갈 만큼 가까웠다. 다행스럽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충남대학교 김수태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고, 1597년에 있었던 26명의 순교 역사를 마주했다.

1864년 건립된 천주당은 26인의 순교자 시성이 봉헌되었다고 한다. 천주당에서 나카사키 항과 바다가 내려 다 보였다. 이곳을 통해 유럽에 가서 천주교를 배우고 인쇄기술을 가져왔었다는 젊은이들이 보이는 듯 했다. 생생함을 간직한 채 곧바로 니시자키 공원 일본 26성인 순교기념비와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26성인 기념비 사진에 한글로 이름을 표기한 안내문
26성인 기념비 사진에 한글로 이름을 표기한 안내문

한국에서도 천주교 성지들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각종 조형물들과 전시 방법들에는 절제미가 있고 심지어 천주고 인이 아닌 내 맘을 울린다. 26인 순교기념비도 그러했는데, 커다란 벽면에 십자가 형식의 디자인, 그 속에 담긴 26명의 순교인들을 실제 크기대로 표현했다.

현대적 디자인을 입었음에도 한명씩 그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올려 보니 순교의 엄숙함과 천주교의 경건함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천주교인이 아니지만 이 곳에서 종교란 과연 무엇이길래 인간에게 이토록 절실할까.

또한 천주교를 통해 발달한 일본 문화 등을 알게 되니 역사와 종교가 가진 밀접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우라성당 앞에서 기념촬영
오우라성당 앞에서 기념촬영

점심을 먹으며 비가 세차졌으므로 자칫하면 군함도에 들어가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나카사키 원조 짬봉을 먹고 난 후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비는 잦아들고 군함도로 향하는 배가 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에게 군함도는 너무나 뜨거운 감자이다. 심지어 군함도가 유네스코 등재되던 2014년 회의 때 무령왕릉과 함께 되었으니 나 또한 잊을 수 없다.

배를 타자 마자 한 남자분께서 영상을 띄우며, 너무나 익숙하게 육성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한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모두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본 메이지 시기 산업유산에 관련된 설명임을 드물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거대한 크레인, 공장, 항구 시설물, 대교 등 우리가 지나가는 해안에 모두 있어 육안으로 메이지 시대의 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다수 1800년대 중반 메이지 시대에 조성된 공업, 산업 시설물들이었다.

영상이 해당 시설물을 지나갈 땐 그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약 30분간의 설명이 끝나고 비로소 군함도가 보였다. 회색 빛의 섬이었다. 

군함도 전경
군함도 전경

우리가 알고 있는 녹색 섬과 너무 달랐다. 파도가 높아 군함도에 내리진 못하고 섬에 배가 근접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개략을 보면 1810년 이곳 일대에 해저 탄광이 발견된 후 본격적으로 1890년부터 미쓰비시 회사가 경영하였다.

1893년부터 산업시설들을 이동하며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1900년대 본격적으로 섬이 확장되어 현재 모습이 되었고, 1916년 일본 최초 아파트가 군함도에 건립되었다.

안내문에는 당시 이곳을 사람들이 살만한 도시와 같이 그려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고 근로자들이 쉬고 놀 수 있는 각종 편의, 문화시설도 즐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섬에 가라앉은 한국인들을 되뇌어보았다. 그 섬을 만들기 위해 일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조선인들의 지옥,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1916년 일본이 섬에 아파트를 건설하던 그 시기, 조선은 어땠고, 공주는 어땠는가 떠올려보았다.

순박한 사람들, 초가집이 늘어져 있는 1910년대 공주 사진이 문득 떠올랐다. 역사적 실재를 마주하며 시대를 이해하면서도 인류가 공존함에 있어 침략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되새겼다. 심난한 마음을 안고 세 번째 날을 위해 잠시 머무를 사세보로 이동하였다. 

세 번째 날 아침 사세보가 내려다보이는 유미하리 다케오카 전망대에 올라 전경을 보고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갑자기 무령왕 춤 연습에 돌입했다.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다들 실력자들이 되어 버렸다. 

사세보 전망대에서 백제춤을 추다
사세보 전망대에서 백제춤을 추다

이어 천주교 유적 다비라 교회와 히라도 성프란체스코 자비에르교회를 잇달아 방문했다.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앞에서 김수태 교수님의 천주교 설명이 더해지자 이해하기 쉬웠다. 곧 이어 가라츠市에 도착했다.

가라츠시의 한자 이름은 당진(唐津). 충청남도 당진시가 생각났다. 급하게 검색해보니 2008년 가라츠시 시의원이 충남 당진을 방문하여 교류 협력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정 내내 비가 쏟아질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맑은 날씨, 다만 습한 공기를 머금고 가라츠 성 박물관에 입장했다.

1608년 축성된 가라츠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인 히로타카가 1602년부터 쌓아 올렸다고 한다. 처음에 멀리서 보니 하얀 새처럼 보였는데, 실제 날개를 펼친 학처럼 보인다하여 무학성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성을 보수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듯한 도자기 제작 기술 등이 눈에 띄었다. 

셋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진행된 가라츠 마쓰로 네트워크 회원들과의 교류회였다. 교류회는 카라츠 로얄 리조트 1층의 연회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반갑게도 공주에서 온 연극협회 회원들이 함께 참석하였다. 무령왕 탄생제 때 공주 연극협회에서 직접 가카라시마 바다 위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다.

공주에 살면서도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들과 그리고 일본 무령왕 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연회는 시작되었고 일본 측에서는 중의원, 시장 등이 앞으로 나와 인사말을 해주었고, 우리는 갈고 닦은 니리무세마 노래를 부르며 회답했다.

일본 교류회 한 분은(명함을 분실하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공주시에도 오셨던 일화, 교류회 사진을 보여주셨다. 무령왕 교류회를 얼마나 뿌듯하고 뜻 깊게 생각하는지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코로나로 완전 전과 같이 북적거리는 교류회가 되진 못했지만 서로를 향한 감사함과 교류의 깊은 뜻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환영교류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용혁 교수
환영교류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용혁 교수
환영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답사팀
환영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답사팀

마지막 날 무령왕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가카라시마로 향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므로 아침에 가라츠시 작은 항구에 도착하였다. 답사팀들은 백제옷을 다시 입고, 우리를 데려다 줄 배를 기다렸다.

배에 탑승하기 전 작은 항구 마을에서 줄다리기 행사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내가 아는 그 줄다리기 인가 서로서로 가까이 가보았다. 젊은 남자들이 줄다리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약간 다른듯하면서도 비슷해 보였다.

마을에 큰 행사인 듯 보였는데 줄다리기를 만드는 뒤편 꼭대기 산에는 신사도 보였다. 마을 주민들이 열심히 하니 우리도 관심을 보이며 사진도 찍는 도중 그 행사를 알리는 안내판 문구를 보게 되었다.

줄다리기 행사 유래가 쓰여 있었는데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조선을 침략하기 직전 군사들의 사기를 돋기 위한 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머쓱해진 나는 더는 그 자리에 머물기 어려워졌으므로 다시 배를 기다리는 일행 쪽으로 나왔다.  

곧 도착한 배에 탑승해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가카라시마로 향했다. 폭우가 온다던 일기예보는 보기 좋게 틀렸다. 우리 이외에도 행사 참석을 위해 온 서울곤지왕네트워크 회원들, 그리고 관공서 사람들로 보이는 인물들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포스코 일본법인에서 온 임원도 있었다. 배는 약 30분간 달려 가카라시마에 도착했고, 작은 마을 곳곳에 무령왕 벽화, 안내판, 탄생제를 지내는 행사장 등 만나는 모습 모두 놀라웠다.

공주에 살면서 무령왕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보았지만, 가카라시마 마을 전체는 무령왕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 무령왕 탄생지인 오비야우라 동굴로 곧장 걸어갔다.

바닷가에 소리 없이 자리한 동굴에는 무령왕의 탄생을 기념하듯 새끼줄 같은 커다란 줄이 가로로 걸려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세웠다는 비석이 있었다. 동굴은 깊지 않은 바위그늘 형태였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렇게 험난한 곳에서 아이를 낳았을까. 

동굴 입구에는 포스코에서 만든 사회적 가치실현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무령왕 탄생지 안내판이 있었는데 포스코의 신기술 공법이 사용되었다고 써 있었다.

우리는 그 입구에서 간단한 탄생 기념제를 지내고, 무령왕 노래를 불렀다.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무령왕의 어머니가 배를 타고 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가카라시마는 지금도 많이 외진 섬이다. 1500여 년 전 이곳은 아마도 더욱 낙후된 곳이었을 터. 고귀해 보이는 왕족들, 그리고 왕비가 섬에 내려 왕자를 낳았으니 전설이 될 법도 하다.

이들은 무령왕을 잊지 않고 기리며 탄생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그 주변에는 막 태어난 아기를 씻겼다는 이야기가 깃든 작은 계곡 우물도 있었다. 그 주변에 우리나라에서 고무장갑 포장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가 갑자기 버스에서 공주대학교 신홍렬 교수님께 들었던 해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날이 좋을 때는 이곳에서 가까운 대마도에서 부산이 보인다고 했고, 해류를 따라 이곳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무령왕인 것이구나. 지리적 배경을 알게되니 더 이해가 깊어졌다.   

오비야동굴의 무령왕위패 앞에서 추모의 예를 올리는 장면
오비야동굴의 무령왕위패 앞에서 추모의 예를 올리는 장면
윤용혁 교수의 무령왕탄생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답사팀
윤용혁 교수의 무령왕탄생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답사팀

바로 섬 입구로 돌아가 탄생제 의식 행사에 참여했다. 총영사관, 포스코 일본법인 임원, 무령왕네트워크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 측에서 주도하여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일본 행사에 우리가 초청된 것이므로 모두 앉아 자리를 채웠다. 나이가 제법 있은 일본인 제관이 제사를 주관 하였는데 약간 대나무 같기도 한 나뭇가지들을 계속해서 공중에 흔들거나 땅에 두드리는 것이 매우 흥미로왔다.

그게 무슨 나무인지 일본인에게 물어봐도 알지 못하였다. 어렵사리 알게 된 나무 이름은 ‘빗죽이’ 였다. 흔히 비쭈기라 부르는 이나무는 흔히 일본 무속에서 쓰이는 데 신을 부르거나 할 때 쓰인다고 한다. 

가카라시마 무령왕기념비 앞에서 거행된 제22회 무령왕탄생제.
가카라시마 무령왕기념비 앞에서 거행된 제22회 무령왕탄생제.
무령왕탄생제를 취재하는 지역 기자들
무령왕탄생제를 취재하는 지역 기자들

답사 일행과 무령왕 네트워크 회원들은 공식행사에 모두 참석하였고 이후 그 자리에 남아 무령왕 춤을 추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의 박수를 받으니 무령왕 댄서(?)들은 보다 흥겨워 했다. 그리고 답사의 하이라이트인 무령왕 탄생제의 막이 내렸다.  

무령왕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무령왕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4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새벽 12시를 넘어 5일째가 되는 6월 4일 다시 공주 무령왕릉 앞으로 돌아왔다. 무령왕릉 앞에서 시작해, 무령왕 탄생지, 그리고 다시 우리는 무령왕 품으로 돌아왔다.

답사는 매우 뜻 깊었고, 기회를 마련해준 그리고 무령왕의 정신과 공주의 문화유산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무령왕국제네트워크 일본과 한국 회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또한 공주인이라면 꼭 무령왕국제네트워크와 함께 가카라시마를 방문해 보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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