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를 강물로 비유한다면 향토사는 세류(細流)와 같다. 세류가 마르지 않고 흐를 때 강의 물줄기도 굵고 도도하게 흐르는 법이다.”

위 글은 1988년 공주향토문화회 발족 후 ‘웅진문화’ 창간호에서 윤여헌 회장이 쓴 권두언의 한 구절이다.

공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에 대한 개발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지역 단체로서 지금까지 소박한 활동을 해온 공주향토문화연구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윤여헌 회장은 “매월의 답사와 특강, 매년 회지 <웅진문화>의 출간, 그리고 부정기적인 세미나 개최, 전통문화 책자 간행, 향토단체 국제교류 등의 사업이 그동안 추진되어 왔다. 그동안의 활동은 미약하지만 지역사회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과 후원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월당 윤여헌 선생(80세)은 1928년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에서 부친 윤석천씨와 모친 덕수 이씨 사이에서 7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그는 그 당시로서는 천재들만이 갈 수 있다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법학도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난 이후 공주고등학교 독일어 교사직을 시작으로 논산여고와 공주사범대학을 거쳐 공주대학교 인문사회과학 연구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충청남도정자문위원 및 평통자문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1994년 정년을 맞기까지 청소년 교육과 대학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 일본 무령왕 실행위원회와 공주 부령왕네트워크 교류협약식 사진.

이런 공로로 그는 1982년 국민훈장(석류장), 85년 공주사범대학 공로표창, 87년 문교부장관 표창, 대한교육연합회장 표창, 92년 충청남도문화상(학술부문), 94년 국민훈장(동백장) 등을 수상하였다.

또 62년부터 30 여 년간 법과 관련된 수십편의 논문은 그가 법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제자들에게 평소 ‘學不厭敎不倦(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 를 몸소 실천한 강직한 선비정신으로 교단의 수범(垂範)을 보인 일면이다. 이렇듯 월당 선생은 청년 시절에 공주대학에 부임해서 정년을 맞기까지 30여년간 대학 발전과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월당 선생은 강단을 떠난 후 ‘향토사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1988년 3월 후배 교수를 비롯한 몇몇 분과 공주향토문화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우리 공주 지역은 역사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유적과 유물이 산재되어 있음에도 관심과 이해 부족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사재를 털어 수집하는가 하면 행정당국에 촉구하여 보존에 앞장서 왔다. 선생은 공주향토문화연구회장직을 지금까지 맡아 오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월당 선생은 “향토사 연구가 단순한 복고주위로 흘러서는 안되며 현재에 뿌리는 박고 과거를 수용하면서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는 역사 인식을 명시하고 있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는 현재 80여 명 규모의 커다란 모임으로 성장하였다.

또 , 회지(會誌)인 ‘웅진문화(熊津文化)’는 제20집을 발간, 올 12월 제21집이 발간될 예정으로 그동안 공주의 역사와 문화유적 등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소개되었다. 이로써 ‘웅진문화(熊津文化)’는 공주의 문화적 수준에 걸맞는 지방향토지로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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