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준 (공주대 교수)

공주대 사학과 이해준 교수의 저서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가 제34회 월봉저작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월봉저작상은 일제시대 언론계와 교육계에서 민족운동에 헌신했던 월봉 한기악 선생(1898~1941)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 매년 학술적 업적이 큰 연구자에게 수여해왔다.

이해준 교수는 “지역문화를 연구·교육하며, 지역의 연구 인력을 양성해야 할 책임을 진 지방대 사학과 교수로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며 “이 상은 나와 비슷한 지방 연구자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는 자랑스러울 수 있을 듯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해준 교수는 현재 문화재위원과 국사편찬위원, 역사문화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96년에도『조선후기 촌락사회사』로 국사학계의 우수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치암학술상을 받은 바 있다.

수상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올해 월봉저작상 시상식은 오는 4월 14일(화) 오후 4시 서울역사박물관 1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현장연구로 서원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
지역문화 키워드, 이해준 교수

지역의 재발견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지역연구’가 두드러지게 활성화되는 현상은 국가에 집중되었던 권력이 국제 사회, 국가, 지방 정부 등으로 분산되고 있으며 개인이 귀속감을 느끼는 공동체도 국가 일변도에서 벗어나 점차 다원화하고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해준 교수는 공주사범대학(역사교육과), 서울대학원 국사학과(문학석사), 국민대학원 국사학과(문학박사)를 졸업했다.

81년부터 94년까지 목포대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전라 지역 향토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업적은 최근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후 한국정신문화원 교수와 충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장을 거쳐 모교인 공주대에서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한국민속학회 고문, 한국사학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 이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문화재감정위원, 국사편찬위원, 역사문화학회장 등이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직함이다.

99년 3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이사관)에 임명됐을 때 가장 ‘적절한 인사’로 향토사 발전의 획기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향토사가는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토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료 수집’에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면서 마을문화, 고문서, 유교유적 등 향토자료의 수집 · 정리 ·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일본가당도 무령왕릉 굴 앞에서 이해준 교수

또한 그는 단순히 전문연구자를 넘어 박물관회나 문화단체를 이끌어 오면서 지역문화를 ‘대중화’시킨 점이나 ‘지역문화교육’, 또 향토문화를 적극적으로 ‘자원활용’함으로써 지역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학자로서의 연구실적은 ‘조선후기 향약연구(90년)’ ‘서해와 금강이 만나 이룬 문화’(충남역사문화원)을 비롯 수십권의 저서와 ‘연산 개태사의 지역문화사적 성격’등 지역문화와 사회사 수십편의 논문이 있다.

그의 학술적 연구업적은 학계에도 널리 인정을 받아 지난 95년 역사학자 치암(癡菴) 신석호(申奭鎬)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 13회 치암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원연구의 블루오션 ‘문중서원’

문중서원이란 18세기 후반이후 19세기에 대체로 하나의 문중이 단위가 되어 문중 활동의 일환으로 始祖나 遠祖·入鄕祖·派祖·中始祖·顯祖 등 문중적 인물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을 말한다.

저자는 18세기 후반이후 이들 문중서원이 대두하는 직접적인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파악한다. 첫째는 문중의 자체결속 강화, 둘째는 향촌사회구조 변화와 이를 조장하고 지원한 당파의 지방거점 마련 기도, 그리고 셋째는 문중 중심의 사회사적 현상 팽배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사족이 향촌사회에서 그들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지배 장치를 더 이상 마련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사족들은 공론에 의한 공동의 이해가 아닌 개별가문 단위 혹은 사적인 형태로 기득권을 유지,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이를 가장 적절하게 달성할 장치로써 혈연적인 결집형태인 동족마을과 문중서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문중서원은 사회변화에 적극 대응하면서 문중권위의 과시 및 유지라는 역할을 담당한 주체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종철 총장(한국전통문화학교)은 “전남지역의 수없이 많은 지역과 마을, 섬 지역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누비면서 현장조사에 관한 한 ‘전설’을 남겼고, 고문서는 물론이고, 각종의 기록자료와 유물, 그리고 역사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지명이나 구비전승자료, 민속학·사회학·인류학적 관심까지 지닌 종합 자료조사 마인드의 소유자”라며 “1980, 90년대 역사학계의 가장 괄목할만한 한 성과를 들라면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연구라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해준 교수가 그간의 향촌사회사 연구를 앞장서 이끌어 온 대표적 연구자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 이해준 교수의『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는, 향촌사회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 수상소감

돌이켜 30여 년의 내 연구를 자평해 보면, 그동안 작은 것, 소외된 것들, 그리고 지역적인 것들을 챙기는데 남보다 조금은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자료를 찾아 현장 곳곳을 헤맨 것이라든가, 제자들과 항상 함께 했던 시간들, 전국 여러 곳에 나를 반겨주는 지역연구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러한 감회와 통한다.

지역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며, 지역의 연구 인력을 양성해야 할 책임을 진 지방대 사학과 교수로서 후회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무수한 자료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점에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면, 이 상은 나와 비슷한 지방 연구자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는, 참으로 영광이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 듯싶다.

이처럼 넋두리를 길게 하는 까닭은 참으로 부끄러운『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경인문화사, 2008)가 저술내용보다, 그러한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 비중을 둔 선정이었다고 생각되어서다.

물론 작게는 ‘문중서원’이란 새로운 연구주제를 부각한 점, 관념화된 서원의 정치·교육·사상적 성격을 향촌사회사와 연계하여 사회사적으로 확대한 것, 그리고 서원연구에서 거의 공백의 시기였던 19세기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많이 한 것 등등이 혹 좋은 평가의 이유일지는 모르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이 빚을 어떻게 앞으로 다 갚아야 할지 두렵기만 하다. 향후 노력을 당부하고 격려하는 의미로 알고 더욱 발분할 것을 약속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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