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內篇  <養生主>

庖丁爲文惠君解牛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포정위문혜군해우 신지소호자도야 진호기의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시신지해우지시  소견무비우자 삼년지후 미상견전우야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止而神欲行

신이신우이불이목시  관지지이신욕행


庖丁(포정)이 文惠君(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다. 포정은 말한다.  

“소를 잡는 기술이 뛰어나다해도 하나의 기술(재주)에 불과합니다.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온통 소만 보였으나 3년이 지난 후에는 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과 귀로 보지 않고 마음과 정신으로 소를 보게 되었고 마음과 정신이 가는 데로 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만 칼쓰는 道를 알 뿐이지 칼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을 질병치료에 邁進(매진)해온 어느 의사는 말한다.

“소위 俗諺(속언)에 짬밥수(경력이 많다는 군대 속언)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하지 않으면 수 십 년을  하여도 돌팔이의사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일년을 하여도 華陀(화타, 神의 경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전문가의 수준은 시간과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意味이다.

학생들 중 공부 잘하는 학생은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책을 보는데(공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浪費(낭비)라고 말한다. 이것은 집중력을 말하는 것이다.  전력투구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독서(讀書)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정신의 에너지를 어설프게 집중하면 에너지의 극대효과가 나올 수 없고 이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나는 한때 能仁書堂(능인서당)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눈을 감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文章(문장)을 제시하고 이 문장의 전체를 머릿속에 입력(入力)시키는 과정을 시간제한 없이 도와주는 방법이다.

요즈음 어린학생들이 컴퓨터에 매달리고 학교와 가정의 주거공간의 狹小(협소)함, 자연과 어우러진 綠色空間(녹색공간)의 부족, 입시경쟁의 정신적 압박감(壓迫感)이 눈(目)과 시력(視力)의 약화로 눈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굉장(宏壯)히 심각(甚刻)한 문제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학교공부가 눈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으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 얘기하면 瞑想(명상)의 세계를 認知(인지)시켜주는 것이다.

일단 마음을 비워서 마음의 빈 공간을 만들고 비어진 마음이 허기짐(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배고픔)이 느껴질 때 하나의 소오스(source)나 실마리, 이것이 소위 공부의 주제인 하나의 문장. 하나의 수학공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소오스(source)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刻認(각인)시켜주는 것이 공부의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을 물흐르듯이 하는 것, 이것이 눈을 혹사(酷使)시키지 않고 눈감고 공부하는 방법이다.  庖丁解牛(포정해우)의 白丁(백정)의 칼이 바로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방법이요 길인 것이다.

莊子  內篇  <養生主>


庖丁爲文惠君解牛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포정위문혜군해우 신지소호자도야 진호기의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시신지해우지시  소견무비우자 삼년지후 미상견전우야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止而神欲行

신이신우이불이목시  관지지이신욕행


庖丁(포정)이 文惠君(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다. 포정은 말한다.  

“소를 잡는 기술이 뛰어나다해도 하나의 기술(재주)에 불과합니다.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온통 소만 보였으나 3년이 지난 후에는 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과 귀로 보지 않고 마음과 정신으로 소를 보게 되었고 마음과 정신이 가는 데로 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만 칼쓰는 道를 알 뿐이지 칼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을 질병치료에 邁進(매진)해온 어느 의사는 말한다.

“소위 俗諺(속언)에 짬밥수(경력이 많다는 군대 속언)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하지 않으면 수 십 년을  하여도 돌팔이의사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일년을 하여도 華陀(화타, 神의 경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전문가의 수준은 시간과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意味이다.

학생들 중 공부 잘하는 학생은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책을 보는데(공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浪費(낭비)라고 말한다. 이것은 집중력을 말하는 것이다.  전력투구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독서(讀書)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정신의 에너지를 어설프게 집중하면 에너지의 극대효과가 나올 수 없고 이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나는 한때 能仁書堂(능인서당)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눈을 감고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文章(문장)을 제시하고 이 문장의 전체를 머릿속에 입력(入力)시키는 과정을 시간제한 없이 도와주는 방법이다.

요즈음 어린학생들이 컴퓨터에 매달리고 학교와 가정의 주거공간의 狹小(협소)함, 자연과 어우러진 綠色空間(녹색공간)의 부족, 입시경쟁의 정신적 압박감(壓迫感)이 눈(目)과 시력(視力)의 약화로 눈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굉장(宏壯)히 심각(甚刻)한 문제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학교공부가 눈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으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 얘기하면 瞑想(명상)의 세계를 認知(인지)시켜주는 것이다.

일단 마음을 비워서 마음의 빈 공간을 만들고 비어진 마음이 허기짐(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배고픔)이 느껴질 때 하나의 소오스(source)나 실마리, 이것이 소위 공부의 주제인 하나의 문장. 하나의 수학공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소오스(source)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刻認(각인)시켜주는 것이 공부의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을 물흐르듯이 하는 것, 이것이 눈을 혹사(酷使)시키지 않고 눈감고 공부하는 방법이다.  庖丁解牛(포정해우)의 白丁(백정)의 칼이 바로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방법이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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