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何謂天  何謂人  北海若 曰  牛馬四足 是謂天 

(하위천 하위인 북해약 왈 우마사족 시위천)

絡馬首 穿牛鼻 是謂人  故曰 无以人滅天 

(낙마수 천우비 시위인 고왈 무이인멸천)

无以故滅命 无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무이고멸명무이득순명근수이물실시위반기진)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사람입니까? 소와 말에 네 개의 다리가 있는 것, 이것이 하늘이다.

소의 코를 뚫고 말에 고삐를 매는것, 이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늘을 다치게 하면 안되느니라. 그대는 편안함과 위험함을 살펴보고 화(禍)와 복(福)을 고요하게 하며 나아감과 멈춤을 신중하게 하라. (察於安危 . 寧於禍福 . 謹於去就 )

사람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질(육체)이 정신을 앞선다는 서양적 唯物論의 논리이다. 이에 자신의 육체를 치장하고 聖殿(성전)처럼 모신다. 그들이 육체를 신성시(神聖視)할 때 정신세계는 퇴보 하였다. 퇴보된 정신세계는 물질(육체)의 저질화를 불러온다.

성형수술이 난무(亂舞)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가 병들어서기 보다 정신세계가 병들었다는  反證이다. 사람들은 비교의 천재이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은 때인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사물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이 자신의 외모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視野(시야)가 치우쳐 있기 때문이며 소와 말은 볼지언정 하늘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교교육이 편협하기 때문이요 절름발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智,德,體는 각각 독립된 단어가 아니다.  智와 德과 體는 하나의 몸통이다. 자신이 상대방과 비교하여 부족하다는 것은 불만스럽고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육체적 단점은 극복할 수없는 천형(天刑)이다.

학(鶴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학은 영영 걸을 수가 없고 거북이 목이 짧다고 길게 빼어 놓으면 목숨조차 부지 할 수 없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서 절대적인 것이다. 거기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뺀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冒瀆(모독)이다.

금강경  위의적정분 (金剛經 威儀寂靜分)에는 내가 가고오고 앉아 있고 서있다 라고 생각하면 나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如來)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若有人言 如來若去來坐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라는 말을 하는데  이와같이 釋迦(如來)는 물질세계와 인간육체의 초월적인 세계인 마음과 정신의 세계를 說破하고 있는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육체라면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육체를 초월한 정신이라야 온전히 육체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육체가 깃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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