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夫醉者之墜車  雖疾不死 骨節與人同 而犯害與人異
부취자지추거 수질불사 골절여인동 이범해여인이

其神全也 死生驚懼 不入乎其胸中 是故遻物而不慴?
기신전야 사생경구 불입호기흉중 시고오물이불습

彼得全於酒 而猶若是 而況得全於天乎
피득전어주 이유약시 이황득전어천호

대체 술 취한 자가 수레에서 떨어지면 다치기는 하여도 죽는 일이란 없지.

정신상태가 무아(無我), 무심(無心)하여 온전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레를 탔다는 것도 모르고 떨어졌다는 것도 역시 모른다.

죽음과 삶, 놀라움과 두려움 따위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사물에 부딪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술에서 정신의 온전한 상태를 얻고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우주(宇宙)와 자연으로부터 온전함을 얻은 자야 어떻겠는가!

술을 마시는 것은 취하기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고 깨어나기 위하여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일상(日常)이 정형화되고 반복된 틀 속에서의 벗어남을 위해 잠시 술을 빌리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日常)과 삶의 부조리와 불합리 나태함을 곱씹어보고 되돌아 보는 계기(契機)로서 술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나 과음(過飮)이나 폭탄주는 삶과 일상(日常)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게으르고 나태한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 안주(安住)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술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굳이 알코올도수 높은 술만을 술이라 여기지 않는다.

梅月堂集에서 김시습은 항상 술에 절어있는 남효온에게 말한다.
“술이라고 하는 것은 알코올이 강하고 격렬한 기운만이 있는 것이 아니오, 昔酒(석주)와 玄酒(현주)가 있는데 석주는 감주(甘酒)요, 현주는 물(水)이요, 모름지기 최고의 술은 물(玄酒)이요.

詩經에 보면 처음에 관혼상제(冠婚喪祭)에는 깨끗한 물 한그릇으로 예절(禮節)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달콤하고 향기가 강한 울창주(鬱?酒)를 사용하고부터는 관혼상제의 처음은 정숙하다가 나중에는 큰 술잔으로 고래가 마시듯하면서부터는 음식과 술의 훌륭하고 정갈한 맛도 알지 못한채 소리지르며 법도와 酒道(주도)가 없어졌습니다. <酒味不獨辛冽 有昔酒玄酒  初筵秩秩 及至巨?鯨吸 跳踊?噓  謔浪無度>”

酒仙 李太白(이태백)은 말한다
“나는 석잔 술에 大道와 통하고 한 말술(斗酒)에 자연(自然)과 하나가 된다. 세상의  희노애락, 권력, 재력이 나에게는 귀하지 않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다만 大道와 自然에 취하려고 하는 것이고 부질없는 세상의 권력, 재력, 희노애락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이다.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鐘鼎玉帛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 與爾同銷萬古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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