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子乃規規然而求之以察  索之以辯  是直用管?天  用錐指地也

자내규규연이구지이찰  색지이변  시직용관규천 용추지지야

且子獨不聞   夫壽陵餘子之學行於邯鄲與  
차자독불문   부수릉여자지학행어한단여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미득국능  우실기고행의  직포복이귀이

남에게 빌려오거나 자질구레한 이론과 논리로서 세상의 이치를 알려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작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송곳으로 바닷물의 깊이를 재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대는 들어 보았는가 ?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새로운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다 배우기도 전에 자신의 걸음걸이를 잃어버려 기어서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일본이 독립군을 斬首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생매장 하고 여인을 강간하고 陰部에 총알을 관통시켰으며 長劍으로 사람의 목을 돼지 목 잘라 버리듯이 잘랐다.

안중근 義士의 울분과 痛恨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몇 해 전에 “孔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冊이 회자(膾炙)되었었다.
孔子의 思想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의 桎梏을 헤쳐 나갈 수 있게 재창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과거의 권위와 이론체계를 崇尙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朱子는 理는 만물의 근원이고 氣는 만물의 형체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
라고 하였는데 굳이 理와 氣가 다른 것이다(理氣二元論)라고 하거나,  또한 같은 것이다(理氣一元論)라고 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논쟁이다 .

마치 禪佛敎에서 頓悟(수행을 통하지 않고 일시에 깨달음)와 漸悟(수행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깨달음)의 논쟁과 같이 비생산적인 논리대결에 불과하다.

周濂溪가 말하는 太極이 無極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철학에서 말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貫通이다  老子의 虛와 불교의 空과 주렴계의 無極은 같은 것이다.

일찍이 梅月堂은 儒敎, 佛敎, 道敎를 融攝하여 확고한 진리체계를 構築했던 것인데 朝鮮은 儒敎의 테두리 안에서 主理論, 主氣論으로 조선사회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리사욕과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더러운 욕심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자질구레한 이론의 틀 속에서 논쟁을 위한 논쟁, 비생산적인 사상과 철학의 踏步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김지하는 말한다. 4.19 이후 50년 동안 우리의 지식인은 반역사적 비도덕적 권력에 빌붙어 曲學阿世를 하거나 외국이론을 들여와 짝퉁장사를 하였다.

朝鮮朝의 병자호란, 임진왜란, 구한말의 일제 侵略.  이것은 치욕을 넘어 民族魂까지 흔들리게 하는 歷史의 恥部이다.

이것의 근원은 우리의 정치, 사상, 철학이 日新又日新의 피나는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伊藤博文을 죽인 것이 아니고 舊韓末의 정치와 사상, 철학 세계를 향하여 깨어나기를 외친 몸부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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