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工倕旋而蓋規矩 指與物化 而不以心稽 故其靈臺一而不桎
공수선이개규구 지여물화 이불이심계 고기영대일이부질

知忘是非 心之適也 不內變 不外從 
지망시비 심지적야 부내변 불외종

事會之適也 始手適 而未嘗不適者 忘適之適也
사회지적야 시수적 이미상부적자 망적지적야

안으로 변함이 없고 바깥으로 따르지 않는 것을 自適이라 한다.

自適한 곳에서 시작 하였지만 일찍이 自適하지 않은 것을 모르고 사물(天下)과 더불어 하나의 생각조차도 깃들지 않는다.

所謂 우리의 문학정서를 恨의 情緖라고 하는데 恨은 유럽의 기독교적 윤리의 측면에서 보면, 노예도덕 즉 賤視되고 汚染된 자로 취급되는 약자의 본능이며 마음깊이 怨恨으로 응어리져 있다. 라고 말하며 일본어로 遺恨, 怨恨, 反感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恨은 否定的 視覺의 鬱抑이나 憤怒의 蓄積이 아니다. 깊은 苦惱의 심화, 不痛不快 (고통을 겪지 않으면 통쾌함을 얻을 수 없다)의 哲理이다.

이것을 일본과 서양 심리학자가 우리 민족정서의 特長이라고 논리화 한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한 논리이다. 粗雜한 논리에 우리 本然의 哲理를 외국이론에 꿰맞추는 格이다.

萬海 한용운은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누구에서 받는 것이 아니다 또 주는 것도 아니다.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 하고 자유를 구걸하지만 자유를 가진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부자유 할 때는 신도 부자유 할 것이고 신이 자유로울 때에는 사람도 자유로울 것이다.

신이 만약에 있다면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가 아닌, '신이여 자유를 받으소서' 라고 얘기해야 할 것이다.   

“神이 만약에 있다면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가 아닌, 神이여 자유를 받으소서” 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정신세계는 神의 세계보다 앞서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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