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진
郢人堊漫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斲之
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盡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吾无以爲質矣 吾无與言之矣

郢人이 자기 코끝에 흙을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匠石에게 이것을 깎아내게 했다. 匠石은 도끼를 바람소리가 나게 휘둘렀으나 郢人은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宋의 元君이 이 이야기를 듣고 匠石을 불러 “어디 시험 삼아 내게도 보여주게” 하니까, 匠石이 대답하기를 “나는 이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이제 郢人이 죽었습니다. 이것을 郢匠之機(마음과 魂이 契合하는것)라고 합니다.”

師資相承이라는 말은 제자가 스승의 뼈와 살을 얻는다는 것이다. 慧可斷臂는 제자가 스승에게 自身의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이다.

敎育은 이렇게 목숨을 바꿀 만큼 熾熱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公敎育은 망가져 있고 私敎育도 돈과 재물에 오염되었다.

梁啓超(1873-1929)는 학교교육의 弊害를 말한다.
첫째 군대식 兵營교육과 같아서 명령조, 주입식 교육을 하여 토론과 창의성 부재(不在)의 硬直된 교육을 하고 있으며 둘째 敎師職을 직업의 수단인 糊口之策으로 삼아 지식의 전달을 백화점에서 商品과 물건을 파는 것과 같이하여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人性,德性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집안의 흥망(興亡)이 家長에 달려있듯 國家의 흥망은 교사의 자질과 능력에 달려있다. 교사는 국가의 棟樑(인재)을 키워내는 사람으로서, 국가흥망의 중차대(重且大)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손자의 학원비 때문에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는다는 할아버지의 恨歎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禪家의 話頭參究에서 말하는 執着이라는 단어 하나를 갖고 3년을 골똘히 생각한 적이 있다. 언어 한 구절에 수십 년을 窮究하는 것이 공부이다.

公敎育에서 시행하는 교육도 소화하지 못하면서 私敎育을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변하면 시대를 앞서가고 변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變亦變 不變亦變 變而變者 變之權操諸己 不變而變者 變之權讓諸人>

조선 오백년의 과거시험이 四書五經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建國以後 오십년간 國·英·數 과목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모름지기 학문은 세상을 경영하고 사용하는 학문 (經世致用)이어야 한다.

즉, 지혜, 德性, 토론, 논문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私敎育을 받지 않아도 교육의 本領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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