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앞
드디어 산행 첫날의 날이 밝았다. 어제 저녁에 미리 예약한 덕분에 아침 7시에 맞춰 식사를 하고 8시에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모두들 첫날이라서 건강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간드룩’、 어제 조금 더 걸어 두었어야 오늘의 일정이 수월한데 그러질 못해서 오늘 하루는 힘이 좀 들것 같다. 하지만 날씨도 화창하고 걷기엔 최고여서 밤부와 힐레를 쉽게 지나고 내친 김에 티케둥가까지 내달은 시간은 11시 였다. 잠시 숨을 고를 겸, 차 한잔과 삶은 계란을 주문했는데 밖에 놓아 먹인 토종닭이 금방 낳은 계란을 삶아 주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히말라야 한 마을의 어린이들이 우리전통놀이와 똑 같은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다.
오후 1시 20분 울레리에 도착하여 점심을 시켜놓고 잠시 쉬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일행 중에 한사람이 갑자기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  경련이 일어난 것이다. 모두들 달려들어  손을 주무르고 열손가락을 침으로 따고 야단법석을 치른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힘들게 산행을 한데다가 계란을 먹은 것이 꼭 체해서 위경련이 일어난 것 같았는데 그 정도에서 풀린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깊은 산중에서 의사를 부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혼자 며칠씩 아래에 남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 안고  다시 멀고 먼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한번 호되게 탈이 난 신 선생님은 자꾸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다.
 
네팔 토종백숙 맛이 일품

네팔의 토종닭과 병아리들
긴 산행을 마치고 지친 다리를 쉬면서 저녁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집 식당에 잡아놓은 커다란 토종닭을 보는 순간 회가 동했다. 한국 사람들이  와서 얼마나 많이 백숙을 시켜 먹었는지 ‘백숙’이라는  우리나라 말을 다 알 정도였다. 그래 유명한 네팔 백숙을 먹어 보려고  "백숙 한 마리 시킬까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좋아라며  대환영이다. 그러나  언제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네팔 사람들은 손님이 와서 음식을 시키면 그때부터 쌀을 씻어 밥을 짓기 시작하고 요리를 하니, 밥 한끼 얻어 먹으려면 빨라야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네팔 산골에서 놓아 먹인 토종닭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백숙을 추가해서 시켰다. 

그렇잖아도 비수기인데 큰 손님을 맞아 연신 싱글 벙글하며 배고프다는  나의 투정을 받아 주던 여주인이 아예 나를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한다. 피차 짧은 영어로 의사 소통을 했지만 나이를 물어보고 자기와 동갑이라며 친구라고 좋아한다.  이렇게 놀다보니 어느새 식사가 준비되어 모두들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전기불도 없는 곳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찬 기운이 도는 방으로 들어가기는 더 싫어서 난로가 피워진 식당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포터 중 한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무(歌舞)를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 못지 않게 이들도 아무 곳에서나 쑥스러워하지 않고 무척 잘 논다. 서로들 자기네 나라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흥이 오르자 이집 식구들이  합석하여 열기를 더해 갔고 드디어 춤까지 추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하루 밤이었지만 무척 정 든 이집 식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하염없는 나그네 길을 출발하여 한시간 쯤 가니 어제 우리가 쉬려했던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고 얼음이 얼어 있다. 이제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함을 알리는 신호다. 입김을 내뿜으며 능선에 오르니  다울리기리봉을 비롯한 안나푸르나연봉이 그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펼쳐진 설산은 가슴이 뭉클 하고 코 끝을 찡하게 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안나프르나의 유혹에 어려운줄 모르고 걷고 또 걸어 구르종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일곱시가 다된 시간이었고, 날은 이미 어두어져 렌턴을 켜고 걸었다.

시누와에서 본 마차푸차르의 위용
돌멩이와 뜨거운 밤을 지내고...

산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고 우리는 어김없이 걸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신 선생님이 산행 포기 선언을 했다. 억지로 더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오전만 같이 가서 길이 갈라지는 촘롱에서 포터 한사람과 함께 지누단다에서  하산할 때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몸도 아픈데 혼자서 남아 있을 신 선생님이 걱정이 되었지만 모두가 포기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부터는 이번 산행코스에서 가장 힘든 마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시누와까지 죽을 힘을 다해 두시간 여의 계단길을 지나 진이 다 빠져 갈 즈음 도반에 도착했다. 해발2500미터가 넘는 도반은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져 도저히 찬물로는 씻기 어려워 따뜻한 물을 한 양동이 사서 고양이 세수를 했다. 저녁을 먹었으나 너무 힘이 들어서인지 입맛이 떨어져 모두가 먹는 양이 줄기 시작했다. 류재열 회장이 묘안을 냈다. 추운 밤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비법으로 불에 뜨겁게 달군 돌맹이 하나씩을 껴안고 밤을 새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안나푸르나에서 ‘돌멩이와 뜨거운 밤’을 지내는 행운까지 누리게 됐다.

출레에 있는 기념품 가게
그곳에 산이 있어...

드디어 오늘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전하는 날이다.
그러나 또 문제가 발생했다. 그동안 잘 따라 오던 이난섭 회장님이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가겠다고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한나절이면 도착할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데우렐리에서 점심을 먹은 후 얼리라는 포터와 함께 남았다. 일행 한사람을 또 떨어뜨려 놓고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코스를 향해 갔다 .

고도가 3000미터를 넘은지 오래고 앞으로 갈수록 산소가 희박해져 산행속도가 늦어지기  때문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가야한다. MBC(마차푸차르 베이스 캠프)3700미터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숨도 차고 날씨도 추워져서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거기에다 류회장님이  힘이 다 빠져 가지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하여보니. 정상에 오른 감동을 느낄 여력도 없는 듯이 다들 녹초가 되어 따뜻한 식당에 모여 있는데 김학수 교수님만  보이지 않았다.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간판,  태권도 교습소를 선전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물었더니 고산증 때문에 부정맥증상이 심해서 누워 계신단다.
깜짝 놀라 급하게 고산증에 좋은 마늘 스프를 시켜 드렸으나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대답 뿐 이었다. 계속해서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MBC까지만 이라도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김 교수님이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모두들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장장 5일간의 오르막길을 걸어 안나프르나 베이스에 오른 우리는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얼굴은 뚱뚱 부었어도 그렇게 바라던 안나프르나에 오른 감동에 젖어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 산에 오르냐고 물었더니 “그곳에 산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일행은 한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까지 등정했다는 성취감에 젖어 하산할 생각도 못하고 안나푸르나 산신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들으려는 듯 산봉우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만 안나푸르나 산신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안나푸르나 산신에게 이번 산행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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