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파 모양의 황금사원
날이 갈수록  입맛이 떨어져 허리 사이즈가 한뼘씩 줄었고, 가도가도 끝이없는 비탈길에 지쳐  일행은 모두 말하는 법도 잊은 듯 했지만 이제는 거의  내리막길이니 올라 올 때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며 신이 났다.

시누와에서 촘롱까지 그 먼거리를 걸어가는 등굣길의 어린 학생들을 만나 껌과 청포도를 바꿔 먹으면서 즐거워하며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 가기도했다. 점점 멀어지는 안나프르나를 아쉬워하며 히말라야계곡의 노천온천이 있는 지누단다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우리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이산가족 이라도 되는양 포옹을 하며 반가워했고  무사히 만남을 기뻐했다.

상봉의 기쁨도 잠시, 선발대들은 다시 앞서 갔고 후발팀은 피로에 지친 몸을 풀기위해 계곡 아래에 있는 온천으로 향했다. 노천 온천은 탕이 세 개가 있는데 노천이라서 모두들 옷을 입은채로 탕 안에 들어가는 요상한 진풍경이 연출 되었다.

결국 선발대를  따라 잡지 못하고 샤울리바자르에서 이번 산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입맛이 떨어져 죽 한 그릇을 두 사람이 나눠먹을 만큼 힘들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느긋하게 즐기면서 내려온 산행 기점인 나야풀에 도착 한 시각은 오전 10시 쯤이었고, 드디어 7박 8일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감회에 젖는 순간이었다.


차가 오는 시간이 시간표

낡고 허름하지만 로컬 버스를 한번 쯤  타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어서 포카라 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몇시 차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시간을 모른단다. 차가 오는 시간이 시간표라나?

태국 황금사원의 돈나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택시를 탈까하고 흥정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재빠르게 올라타고 멀리 보이는 안나프르나를 뒤로 접은채 꾸벅 꾸벅 졸다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페와 호수가에 있는  호텔에서 일행을 만나 한국식당을 찿아가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그 동안 수고해 준 포터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으나 선발 팀과 함께 내려 왔던 게달이라는 포터 한 명이 보이지 않아 수고비를 지불하지 못했다.

저녁 때가 되어 호텔에서 게달을 만나기 위해 들어가 보니 게달이 이미 와 있었다. 말을 안하고 있으면 한국인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한국인을 닮은 게달은 지금 겨우 스무살의 대학생이다. 학비를 벌기위해 겨울 방학동안 그 어려운 포터일을 하면서도 어려운 내색 한번 없이 항상 생글생글 웃었다. 남의 나라 학생이지만 착한 게달이 너무 예뻐서 나는 우리팀의 공동경비에서 약간의 장학금을 줄 것을 제의했고, 모두들 찬성하여  두명의 대학생을 불러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  한학기 장학금에 해당하는 돈을 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해했다.

앙코르왓 신상 부도에 키스하고 있는 이난섭 회장
더구나 김학수 교수님께서는 한글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에 오면 모든 경비를 학교 측에서 부담하는 교환학생으로 초청하겠다는 약속까지 하셨으니 이만하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훌륭한 외교를 했다고 자부하며 뿌듯해 했다.

 카투만두에 도착하자마자  확실히 나이가 든 층이라서 그런지 며칠동안 못 먹은 한국음식이 한이 되어 우리 일행들은 여기서도 비싼 한국음식을 즐기러 갔고, 나와 김 교수님, 류 회장님은 에베레스트라는 근사한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맛있고 싼 스테이크를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세계 문화유산인 타멜두루바를 찿았다. ‘두르바’란 원래 왕 또는 왕궁을 지칭하는 말인데. 카투만두시의 심장부에 위치한 타멜두르바 광장은 구 왕궁, 원숭이신 하누만도카, 카스만답사원, 칼리 바이브리석상, 꾸마리사원 등  카투만두의 주요 유적지들이 모여 있어 이지역의 역사 고건축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주변에는 토산품과 불교용품을 파는 노점상과 벼룩시장이 많아 쇼핑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전기 사정이 좋질 않아 저녁엔  대부분의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았고 그나마 자가 발전기가 있는 곳 만 불을 밝히고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을 겨우 살 수 있었다.

앙코르왓 한 사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캄보디아 스님

1월이 다 지나고 2월의 첫날을 맞았다. 오늘은 카투만두 시내권에 산재해 있는 일곱 군데의 세계문화들을 돌아보기 위해  대절한 밴을 타고 가장 멀리 있는 박타풀을 향했다.

박타풀은  한때 카투만두 전역의 수도이기도 했고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말라왕조 시대에 최대전성기를 누리며 네팔문화 와 함께 크게 발달한 도시이다.  지금은 고즈넉 할 정도로 중세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찾을 때 마다 다시 또 와 보고 싶다고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제대로 보려면 며칠을 보아야 하는 곳이지만 대충 한바퀴 돌아보고 나와 파탄두르바로 갔다.

파탄 두르바도 수박 겉핧기를 하고 네팔에서 가장 큰 수투파가 있는 보드나트 사원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주변에 있는 티벳식당에서 우리의 음식과 닮은 모모라는 만두와 수제비인 띤뚝, 그리고 뚝파 라고 하는 칼국수를 오랜 만에 맛있게 먹고 파슈파트나트로 갔다.

인생은 나그네길

티벳캠프안에 있는 사원에서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는 스님들.
이곳은 시바신을 모시는 힌두교의 황금사원이 있고, 이 사원 앞에는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화장을 하는 가트(화장터)가 있다. 인도 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까이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직접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화장 할 때 나는 냄새에 머리가 아파 올 때까지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신의 배가 팽창하여 뻥 하고 터지는 소리에 모두 깜짝 놀랐다.

산다는 것은? 죽음이란?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과연 나는 살아있는 것인가?
일행은 화장 장면에 잠시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성찰해 보고 있었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이 아니냐? 일행은 얼른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 사원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 코스는 시내에 있는 몽키템플 인 스왐부나트, 겨울의 짧은 하루 해를 이용해 여러 곳을  돌아보는 것이 무리였지만  한 곳이라도 더 볼 욕심에 길을 서둘렀으나 시내에 돌아오는 시간이 퇴근 시간과 맞물려 차가 밀렸다. 하는 수 없이 스왐부나트는 멀리 지는 저녁노을과 함께 주마간산으로 보고 네팔에서의 12박13일간의 아쉬운 여행을 마무리했다.                      (끝)

태국공항에서 단체사진(좌로부터 류재열, 엄태환, 신현보, 이대원(필자), 이난섭, 신동희, 이진우, 김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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