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입니다

▷ 공주여고 3학년 손유진 학생
9월이 되었습니다. 귀뚜라미가 울고, 풀 섶에서 이름 모를 벌레가 이슬로 목을 적시며 하루의 시작을 노래합니다. 어느새 해바라기는 울타리 너머를 기웃거리고 뭉게구름은 계절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저의 봉사활동은 부모님께서 함께 가기를 권하셔서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일이니까 벌써 6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한 번 두 번 가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도 혼자 갈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열렸습니다. 또 그 곳에 계신 분들이 궁금해지고 그 중에는 그리워지는 분이 있기도 해서 자연스레 찾는 횟수도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내과의사이신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신 분이라서 그런지 형편이 어렵고 소외된 분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상시에도 저희들에게 사랑과 봉사 그리고 나눔의 마음을 가지라고 행동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말씀으로 강조하시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리가족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일에 동참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따라다녔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안에서 느끼는 감동과 보람 그리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뜨거움과 기쁨 그리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이런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에 나간 곳은 집과 가까운 곳이어서 부모님과 함께 가족단위로 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혼자서도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사랑의 호스피스와 기독교 종합 사회복지관이 우리가 주로 다녔던 곳입니다. 집에서 먼 오지에 의료봉사를 나가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주로 “왕촌 어버이 집” 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지만 마음과 뜻을 함께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시간을 내서 갈 수 있는 곳도 선택되었습니다.

주로 아버지는 건강 상담과 치료를, 어머니와 저는 주방일과 세탁물정리, 청소 때로는 목욕봉사 등을 하였습니다. 

방문하다 보면 분명히 그때마다 필요한 일들이 있었기에 꼭 해야 할 일을 계획해서 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찾아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큰 부담을 가지면 자칫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위험이 있으니 자연스럽고도 친밀한 일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지속적인 마음으로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그런 생각과 마음자세가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힘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 중의 하나였던 호스피스 활동을 통하여 느낀 점은 누구나 건강을 유지한 채 오래도록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병마로 고통 받고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완치될 약과 치료법도 없는 상태에서 환자는 두려움과 절망,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으로 때로는 절망에 빠지거나 회생의 기적을 믿는 마음으로 혼란과 외로움에 휩싸여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거동도 못하시며 병원에 가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계신 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계셨는데 곁에서 함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 받고 굳이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그 눈 속에서 혹은 잡은 손과 손을 통하여서도 많은 것을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할머니 한분은 가서 뵐 때마다 눈자위가 항상 젖어 있어서 측은하고 마음이 더 가는 분이었습니다. 손을 잡아드리면 잡은 손을 놓지 않으셔서 집안 정리도 하여 드리고 청소도 도와 드리려던 처음의 계획은 해보지도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만 잡아드리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곁에서 보시던 우리 아버지께서 농담으로 “할머니, 우리 딸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오라고 할까요?” 하시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셔서 우리 모두 크게 웃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평상시의 조용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신 채 돌아가셨는데 다른 봉사자 어른을 통하여 할머니께서 나에게 꼭 전해주라고 부탁하셨다는 봉투 하나를 전달 받았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곳에는 학비에 보태 쓰라는 글과 돈 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순간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과 감동이랄까 애잔함이랄까, 무언가 눈앞이 뿌옇게 되면서 할머니의 젖어있던 눈망울과 야위고 하얀 손가락이 함께 교차되면서 그냥 멍하게 한참동안 서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30대 후반의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자궁암 말기라 하였습니다. 온몸이 붓고 특히 복수가 차서 배가 심하게 부어오르는 분이셨습니다. 갈 때 마다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시면서 고통을 의연하게 참는 정말로 의지가 대단한 분이신데 그 분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5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심하게 아픈 와중에도 몸의 청결과 몸가짐에 특별히 신경을 쓰시는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혹시라도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옷이 누추해지면 옆에서 지켜 볼 날이 얼마 안남은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를 멀리할까봐 걱정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수차례 방문 후에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에게 처연한 표정으로 배가 너무 부르고 부종이 심하여 외모가 변하니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 주려고 해도 자꾸 무서워하고 피해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슬프다고 눈가를 적시며 힘없이 말씀 하셔서 우리 모두를 눈물짓게 하셨습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유달리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신데 우리가 방이라도 청소해 드리려하면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시면서 청소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불안한 듯 감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뀔세라 당신 스스로 확인하시고 정리한 것을 또 확인하셔야 되는,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인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우리는 저 할머니의 그동안 살아오신 과정을 모르잖니? 아마 그런 성품이 되기까지는 어떤 경험의 상처랄까 원인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더 불쌍하잖니? 그냥 할머니 마음상하지 않게 조심해가면서 천천히 다가가 보자”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항상 경계하시고 긴장하시지만 나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태연하게 지냈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조금은 웃어주실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초연히 대하였더니 점차 경계의 눈빛이 사라졌습니다.

기독교 사회복지관에서는 장애를 가진 초등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장애아동 학습프로그램보조를 하였습니다. 색종이 접기와 볼 풀장에서의 놀이, 율동치료와 간식 먹기 등의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아이들의 특성상 산만하고 자칫 위험한 상황들도 있었으나 무사히 넘어 갔습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선생님들만으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습니다. 물을 엎지르거나 음식물을 흘리고 끊임없이 옆의 학생과 다투고 전혀 주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산만함으로 계속 어지럽히기만 하였습니다.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은 막막하였습니다. 선생님, 복지관 직원, 봉사자 모두 합해도 너무 손길이 부족하여 장애아를 돌보는 국가와 사회의 제도가 보다 확충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 했습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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