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유진(공주여고 3학년)

돌이켜 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할머니 한분은 가서 뵐 때마다 눈자위가 항상 젖어 있어서 측은하고 마음이 더 가는 분이었습니다.

손을 잡아드리면 잡은 손을 놓지 않으셔서 집안 정리도 하여 드리고 청소도 도와 드리려던 처음의 계획은 해보지도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만 잡아드리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곁에서 보시던 우리 아버지께서 농담으로 “할머니, 우리 딸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오라고 할까요?” 하시자 고개를 끄덕끄덕하셔서 우리 모두 크게 웃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평상시의 조용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신 채 돌아가셨는데 다른 봉사자 어른을 통하여 할머니께서 나에게 꼭 전해주라고 부탁하셨다는 봉투 하나를 전달 받았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곳에는 학비에 보태 쓰라는 글과 돈 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순간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과 감동이랄까 애잔함이랄까, 무언가 눈앞이 뿌옇게 되면서 할머니의 젖어있던 눈망울과 야위고 하얀 손가락이 함께 교차되면서 그냥 멍하게 한참동안 서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30대 후반의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자궁암 말기라 하였습니다. 온몸이 붓고 특히 복수가 차서 배가 심하게 부어오르는 분이셨습니다. 갈 때 마다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시면서 고통을 의연하게 참는 정말로 의지가 대단한 분이신데 그 분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5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심하게 아픈 와중에도 몸의 청결과 몸가짐에 특별히 신경을 쓰시는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혹시라도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옷이 누추해지면 옆에서 지켜 볼 날이 얼마 안남은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를 멀리할까봐 걱정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수차례 방문 후에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에게 처연한 표정으로 배가 너무 부르고 부종이 심하여 외모가 변하니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 주려고 해도 자꾸 무서워하고 피해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슬프다고 눈가를 적시며 힘없이 말씀 하셔서 우리 모두를 눈물짓게 하셨습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유달리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신데 우리가 방이라도 청소해 드리려하면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시면서 청소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불안한 듯 감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뀔세라 당신 스스로 확인하시고 정리한 것을 또 확인하셔야 되는,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인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우리는 저 할머니의 그동안 살아오신 과정을 모르잖니? 아마 그런 성품이 되기까지는 어떤 경험의 상처랄까 원인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더 불쌍하잖니? 그냥 할머니 마음상하지 않게 조심해가면서 천천히 다가가 보자”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항상 경계하시고 긴장하시지만 나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태연하게 지냈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조금은 웃어주실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초연히 대하였더니 점차 경계의 눈빛이 사라졌습니다.

기독교 사회복지관에서는 장애를 가진 초등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장애아동 학습프로그램보조를 하였습니다. 색종이 접기와 볼 풀장에서의 놀이, 율동치료와 간식 먹기 등의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아이들의 특성상 산만하고 자칫 위험한 상황들도 있었으나 무사히 넘어 갔습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선생님들만으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습니다. 물을 엎지르거나 음식물을 흘리고 끊임없이 옆의 학생과 다투고 전혀 주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산만함으로 계속 어지럽히기만 하였습니다.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은 막막하였습니다. 선생님, 복지관 직원, 봉사자 모두 합해도 너무 손길이 부족하여 장애아를 돌보는 국가와 사회의 제도가 보다 확충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 했습니다.

최근에는 주로 공주시 상왕동에 위치한 “왕촌 어버이 집”을 다녔습니다. 몇몇 기관에 봉사를 다녀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형편이 덜 어려운 기관도 있었고, 대외적으로 많이 홍보가 되었기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단체나 봉사자들이 많았던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왕촌 어버이 집”은 다른 곳과 비교하여 볼 때 봉사자의 수도 적고 형편이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족은 그 곳을 집중적으로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을 덜어드리고 싶었기에 뜻을 같이 하여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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