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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보는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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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롱망촉(得聾望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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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등록일
2008-03-24 16:19:58
조회수
2289

 

후한(後漢)의 세조 광무제(光武帝)가 비로소 제위에 올라 낙양으로 들어가 그곳을 수도로 정했을 무렵이다.

경시제(更始帝)는 적미(赤眉)의 적에게 쫓겨 장안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 광무제는 경시를 휴양왕으로 봉했으나 적미와 대항도 못하고 곧 항복하여 살해되었다.

그 무렵 국내에는 장안에 웅거하고 있는 적미를 비롯하여 농서에는 외효, 하서에는 두융, 촉(蜀)에는 공손술, 휴양에는 유영, 여강에는 이헌, 임치에는 장보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 중 적미의 유분자, 휴양의 유영, 여강의 이헌, 촉의 공손술 등은 황제의 칭호를 쓰고 있었다.

광무제는 먼저 적미인 유분자를 토벌하고 이어 유영, 이헌, 장보 등을 차례로 토벌해 갔다. 두융은 순응하는 뜻을 표했으므로 남은 것은 농서에 있는 외효와 촉에 웅거하고 있는 공손술 두 사람이었다.

외효는 앞서 광무제와 손을 잡고 서주 상장군(西州 上將軍)의 칭호를 받고 있었으나 나날이 강성해지는 광무제의 기세에 겁을 먹고 촉의 공손술과 손을 잡고 이에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나라를 세워 제위를 오른 공손술은 외효가 보낸 사신을 모욕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외효는 공손술과 합칠 생각을 버리고 반대로 광무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와의 결탁을 더욱 두텁게 했다. 그러나 외호는 광무제로부터 신하가 될 것을 요구받자 이를 거절하고 배반을 했는데 건무(建武) 9년에 이르러 광무제와 대립 상태인 채 병이 들어 죽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그 아들 구순(寇恂)이 항복해서 마침내 농서의 땅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이때 광무제는, “인생이란 족함을 모른다. 이미 농서를 얻었으니 다시 촉을 얻어야겠다”고 큰 뜻을 술회하였다.
남아 있는 것은 촉의 공손술 뿐이다. 건무 13년 광무제는 대군을 일으켜 촉을 정벌, 이를 대파하여 전국의 평정을 끝내고 후한제국의 기초를 굳게 했다.

작성일:2008-03-24 16:19:58 58.78.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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