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皦其下不昧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惚恍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老子는 지금 있는 것이 갑자기 없어지며,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모든 사물이 형체 없는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道紀라고 설명한다
老子 13 章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及吾無身 吾有何患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인간세상을 憐憫의 눈으로 바라보는 神仙은 사람들의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馳騁畋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是以聖人 爲腹 不爲目 故去彼取此사람들이 평생을 학문에 邁進하고 음악, 미술, 문학을 포함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그 눈을 밝게 하고 그 귀를 총명하게 함이다. 그러나 그 눈을 밝게 하고 그 귀를 총명하게 하는 것을 어찌 지혜라고 할 수 있겠는가!莊子는 人間世篇 에서 나는
三十輻 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故有之以利 無之以爲用사람은 命대로 산다고 하는데 인간이 宇宙의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진 존재라는 것을 인식 한다면 實로 운명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宇宙가 命이요, 萬物이 命이며, 萬物속에 살아가는 인간도 命이기 때문이다.中庸에서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道家에서 “하나” 라고 하는 것은 宇宙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禪家에서는 “萬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 ”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夫唯不爭 故無尤태양이 萬物을 만들어 내지만 물은 태양을 만들어 낸다. 古代人은 태양과 물을 宇宙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이론은 옳다. 강과 바다가 많은 골짜기의 근원이 되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郭店楚墓竹簡에 말한다.사람들은 憂患(근심)을 자신의 몸처럼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큰 憂患이 있는것은 자신의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몸이 없다면 어찌 憂患이 있겠습니까?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緜緜若存 用之不勤大自然이 만물을 만들어 내듯이 모든 암컷은 위대하다. 우주의 생성소멸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퍼붓는 사랑이 멈추지 않듯이...谷神을 여자의 생식기라고 하고 河上公은 “사람이 五臟六腑(身體)를 잘 다스리면 죽지 않는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天地之間 其猶??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結芻爲狗 設之於祭祀 盡飾以奉之 夫豈愛之 適時然也 旣事而棄之 行者踐之 夫豈惡之 亦適然也풀이 소에게 먹히려고 자라는 것이 아니지만 소가 뜯어먹고, 개가 사람에게 잡아먹히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잡아먹는 것은 하늘이 어질기(仁慈) 때문이다. 지진과 태풍이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商使民無知無欲 使夫知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을 버려라.국민(백성)이 다투지 않을 것이다.욕심을 내면 눈에는 귀중한 것(보석) 만 보이고 귀중한 것만 보이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천지에 도둑이 들끓는다.따라서 聖人之治는 국민
▷ 이철진 券內者行乎无名 券外者志乎期費行乎无名者 唯庸有光 志乎期費者 唯賈人也无所逃於天地之閒 非陰陽賊之 心則使之也자기 자신과 合致된 자는 이름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기 밖의 일에 마음을 쓰는 자는 끝까지 명성과 재물을 쫓는다.따라서 天地之間에 나에게 害를 끼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美國 링컨 대통령은 정직(honest)을
陶者曰 我善治埴 圓者中規 方者中矩匠人曰 我善治木 曲者中鉤 直者應繩夫埴木之性 豈欲中規矩鉤繩哉 然且世世稱之曰 伯樂善治馬而陶匠善治埴木 此亦治天下者之過也陶工은 말한다. 나는 흙 만지는 솜씨가 뛰어나다. 둥근 것은 항아리로 사용하기에 알맞고 네모진 것은 쌀통하기에 적당하다.목수는 말한다. 나는 나무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굽은 것을 만들면 그림쇠에 착 들어맞고,
▷ 이철진大馬之捶鉤者 年八十矣 而不失毫芒於物无視也 是用之者 假不用者也 以長得其用 而況乎 无不用者乎 物孰不資焉楚나라에 허리띠쇠(帶鉤)를 만드는 匠人이 있었다. 80살이 되어도 조그만 실수가 없었다.大司馬가 물었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나는 어릴 때부터 허리띠 만드는 일이 좋아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허리띠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 이철진郢人堊漫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斲之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盡堊而鼻不傷郢人立不失容 吾无以爲質矣 吾无與言之矣郢人이 자기 코끝에 흙을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匠石에게 이것을 깎아내게 했다. 匠石은 도끼를 바람소리가 나게 휘둘렀으나 郢人은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宋의 元君이
▷ 이철진老聃曰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知其白 守其辱 爲天下谷 노담왈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지기백 수기욕 위천하곡 人皆取先實福 己獨取後虛全 苟免於咎 인개취선실복 기독취후허전 구면어구 其行身也 徐而不費 無爲也而笑巧 기행신야 서이불비 무위야이소교 老聃은 말한다. 수컷인줄 알면서 암컷의 자세를 취하고 자신이 뛰어난 줄 알면서 세상의 진흙탕 속에 뒹군다. 사람들
▷ 이철진桓團公孫龍辯者之徒 飾人之心 易人之意 郢有天下 환단공손룡변자지도 식인지심 역인지의 영유천하 目不見 指不至 鏃矢失之疾 而有不行不止之時 목불견 지부지 촉시실지질 이유불행부지지시能勝人之口 不能服人之心 辯者之 囿也 능승인지구 불능복인지심 변자지유야 桓團은 辯者의 무리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쓸데없는 일에 꾸며대게 만들고 사람들의 생각을
▷ 이철진支離叔與滑介叔 觀於冥伯之丘 지리숙여골개숙 관어명백지구 滑介叔俄而柳生其左肘生者假借也 假之而生 골개숙아이유생기좌주 생자가차야 가지이생 且吾與子觀化 而化及我 我又何惡焉 차오여자관화 이화급아 아우하오언 지리숙과 골개숙이 冥伯의 언덕에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골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혹이 생겼다. 그는 마음속으로 놀라 이를 꺼리는 것 같았다. 지
▷ 이철진毛嬙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모장여희 인지소미야 어견지심입 조견지고비 麋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自我觀之 미록견지결취 사자숙지천하지정색재 자아관지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 殽亂 吾惡能知其辯 인의지단 시비지도 번연효란 오오능지기변 毛嬙과 麗姬를 사람마다 美人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 이철진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 聖人不由而照之於天 인시인비 인비인시 시이 성인불유이조지어천亦因是也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역인시야 추시득기환중 이응무궁是亦一無窮 非亦一無窮也 故曰 莫若以明 시역일무궁 비역일무궁야 고왈 막약이명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 아닌 것도 없다. 된다가 있으면 안된다가 있고 옳다. 에 의거하면 옳지 않다. 에 기대는 셈이 되고
▷ 이철진古之人 其知有所至矣 有以爲未始有物者고지인 기지유소지의 유이위미시유물자 其次以爲有物矣 而未始有封也기차이위유물의 이미시유봉야 其次以爲有封焉 而未始有是非也기차이위유봉언 이미시유시비야 是非愛憎之彰也 道之所以虧也시비애증지창야 도지소이휴야 옛 사람의 叡智에는 애초에 사물이 없다는 無의 境地가 있고,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差別이 없는 境地가 있으며, 差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