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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보면 고물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ㅇㅇ환경이나 ㅇㅇ자원으로 이름을 바꿔서 고물상이 아니다. 고물(古物, 故物)은 그냥 오래된 물건이지만 요즘은 오래되어 못 쓰게 된 것보다는 싫증나서 쓰지 않는 것, 쓸 만한데 버려진 물건, 재활용되는 것을 취급하니 환경이나 자원이라는 이름이 그 성격을 더 정확하게 표현했다.그래도 고물상이란 말이 더 정감 있다. 도심을 벗어나 국도변 시골길 외진 곳에 높은 담을 치고 꼭꼭 숨어있다. 학교 다닐 때 조각하는 친구들과 작품재료를 찾아 가끔 들리면 그곳은 별천지였다. 높게 쌓은 탑처럼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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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9.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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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 이었다. 맞춰둔 클래식 FM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 이름이 나온다. 미술사에 그리 중하게 오르내리는 작가가 아니다.그림은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의 아리아, 자기를 버리고 떠난 테세우스를 추억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나온다.그림 설명과 함께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이야기도 곁들이고 레이턴이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설명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톺아보기.프레더릭 레이턴 가족은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유럽을 여행하며 생활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조금씩 그림을 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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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8.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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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뭘 먹었나. 굴비구이에 호박, 매운 고추 넣은 된장찌개, 잡곡밥, 배추김치, 명이 장아찌…내가 먹은 음식이 바로 나,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먹는다. 그 재료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고 먼 거리를 여행해 밥상에 올라왔고, 농부가 밭에서 정성껏 길러 낸 생명이다. 집밥, 집쿡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기고 방송,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에 저마다 요리를 선보인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초 간단 요리부터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레서피 까지 제공한다. 요리 방송이 많다는 것은 이런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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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5.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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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이사하며 TV를 없앴다. 어느 날 전기요금 고지서를 살펴보니 TV 수신료가 붙어 있다. 시골로 오며 최대한 아끼고 덜 쓰고 덜 벌자는 생각에 찬찬히 고지서를 살펴 본 덕분에 발견했다.한전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뒤로 수신료는 내지 않았으나 가끔 전화가 왔고 그 동네에 TV 없는 집은 우리집 뿐이라며 확인하러 오겠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거짓말이지! 하는 듯했다. 몇 번 전화를 더 받았으나 확인하러 오지는 않았다.쌍달리로 이사한 후 몇 해가 지나고,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재택근무하는 우리집 사람에게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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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4.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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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일 년 살아보기를 하던 친구가 작년 봄에 우리집에 왔다. 정안휴게소에 도착한 친구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은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제주도에 있는 동안 개나리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유채꽃을 보려고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그는 유채꽃을 보며 무엇인가 허전했고 그것은 육지 어디에나 너무도 흔하게 핀 개나리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개나리가 참 예쁘다고……. 노란 유채꽃 밭을 보며 봄을 맞이하는 제주도, 더 일찍 피는 매화나 벚꽃도 있지만 우리는 노란 개나리를 보며 봄을 맞는다.남쪽 땅 제주에서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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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3.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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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을 보며 나이 든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1928-2019 벨기에)가 만든 마지막 영화이기 때문이다. 베레모를 쓴듯한 머리 모양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사람들과 얘기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영화에서 내내 말한다.‘아마 88세인 바르다와 나는 서른셋(영화 속 JR의 나레이션)’인 JR은 큰 카메라 렌즈 사진이 눈에 띄는 차를 타고 달린다. 트럭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즉석카메라 부스처럼 5초 후에 대형 사진이 출력된다.밀밭을 달려 시골 마을, 농장, 곧 사라질 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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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3.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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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소란하다. 마당에 있는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다. 곧 줄을 끊고, 울타리를 넘을 기세다. 무슨일이 있나 밖에 나가니 언덕에 낯선 개들이 엉켜있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난다.마당에서 불을 지피던 옆집 리비 아빠가 놀라 따라간 모양이다. 언덕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들을 지켜본다. 조마조마해서 언덕을 올려보며, 포수는 왜 오지 않느냐 성화를 하는데, 얼마후 RV 차 한 대가 산에서 내려오다 멈춰 선다.총소리가 나고 소리는 잦아든다. 몸집 큰 사냥개들은 입에 피를 묻히고 우리 집 앞을 어슬렁거린다. 시간이 또 흐르고 트럭이 오더니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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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2.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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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벌써 일주일이 휘리릭 지나가고 3단계 같은 2.5단계, 코로나 방역으로 모두 꽁꽁 얼었다. 가족끼리도 거리 두기로 다섯 명 이상 대면할 수 없는 시절이다.예년 같으면 연말연시에 삼 남매와 식구들이 부모님 댁이나 우리 집에 모여 왁자지껄했는데 가깝게 사는 동생들이 번갈아 부모님을 뵙고, 두 분만 우두커니 앉아있는 집은 적막하고 생기가 없다.핑계 삼아 부모님을 쌍달리로 모셔왔다. 문만 닫으면 단절되는 아파트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집을 나오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이런저런 말로 구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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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1.01.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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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작가미성]은 미술관 풍경으로 시작한다. 나치가 정한 블랙리스트 예술가를 소개한 퇴폐미술전이다.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 지금은 그림값도 높고 세계에서 유명한 미술관에 소장된 작가들이 총출동한 전시회, 작품감상을 위해 천천히 걷는 사람들, 그 작품이 노동자를 외면하고 자기애에 빠진 형편없는 것이라며 위협적인 몸짓으로 멸시하듯 큰 소리로 말하는 도슨트, 어린 쿠르트는 눈 앞을 가리며 화가가 되고 싶지 않다고 이모에게 귀엣말을 한다.〈작가 미상>은 1960년대 리히터의 포토페인팅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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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9.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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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간다. 현호색(나와 사는 내편)이 잔디를 깎는다. 장마철에는 돌아서면 올라오는 힘찬 풀님들 덕에 비가 살짝 그치면 예초기를 든다. 구름 낀 하늘, 습기가 있어 잘린 풀도 날리지 않는다. 미처 뽑지 못한 풀이 삐죽삐죽 나왔는데, 무릎을 훌쩍 넘겨 자란 개망초, 차 만들려고 심은 캐모마일은 돌보지 않아서 풀이 반이다. 꽃밭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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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8.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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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달작은도서관의 텃밭에 심은 감자를 캤다. 하지 무렵 한줄기를 캐보니 알이 작아서 일주일 더 두었다가 함께 사는 초딩3년 율리아 친구들이 놀러 온 날, 함께 수확했다. 가끔 찾아오는 고라니와 킁킁대는 개소리만 들리던 밭이 아이들 몇 명으로 왁자지껄 활기가 넘친다. 감자 옆에 심은 손가락만 한 당근도 뽑는다. 그 옆에 처음 보는 당근꽃은 하얀 레이스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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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7.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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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온통 베이비 그린으로 가득했던 숲은 하루하루 지나면서 녹음으로 짙어진다. 지난 겨울부터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코비드 19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모두를 집에 묶어두면서 여행, 쇼핑, 모임, 스포츠 등 대면접촉을 통제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시골마을에 살다 보니 뉴스와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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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6.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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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해남에 있는 행촌 문화재단 레지던시 작가로 해남 이마도에 머물며 작업을 했다. 공주 산골에서 2012년 겨울부터 살았으니 4년 만에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 셈이다. 산골마을 로 이사 한 후로는 매일 바뀌는 새로운 풍경에 매혹되어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당에 나무와 꽃을 심고 풀을 메고, 먹을 수 있는 푸성귀를 채집하고, 씨앗을 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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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5.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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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으로 그림이 날아왔다. 르누아르의 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멜리나가 그린 그림이다. 멜리나는 가깝게 지내는 큐레이터의 손녀, 할머니는 멜리나가 그린 그림이나 일기, 직접 만든 선물상자 등을 휴대폰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자주 꺼내보며 조용히 웃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 나는 말을 건다. “비타민 충전 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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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헤경
2020.04.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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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Fernando Botero 1932- 캔버스에 유화 185x122cm 2000입춘도 지났으니 이제 봄. 낮이면 포근한 날씨 덕에 반 팔 셔츠로 마당 구석구석을 누비며 어린 봄나물을 찾는다. 연보라 봄까치(개불알풀) 꽃이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매화 가지에는 꽃눈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가지치기를 안 해서 이리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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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3.0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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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량생산과 유통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고, 이러한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소재로 팝아트가 등장했다.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넘쳐나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특히 미국 기업의 상표를 단순한 이미지, 화려한 색채, 반복, 거대한 화면 구성으로 재현했다. 미술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광고 디자인에서나 볼 수 있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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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20.02.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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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요정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주연인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개봉했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불평등과 진실을 위해 단식하고, 우리 정부는 일본 아베 정부에게 지소미아 종료 연기를 선언했다. 범죄인 인도법으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홍콩, 23일 크리스티 홍콩 가을 경매 이브닝 세일 ‘20세기 & 동시대 미술&r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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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19.12.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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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로 태어난 내 친구는 아버지가 아들로 출생신고를 해서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남자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남자 앞길 막는다고 중학교도 보내지 않아서 일하며 어찌어찌 고등학교에 왔는데 등교할 때는 교복도 가방도 없이 집을 나섰다고 얘기한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해서 성적이 좋았는데 장학금 받으며 교대를 나와서 지금은 선생님이다.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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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19.11.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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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박 작가가 “뱅크시가 일냈네.”라고 한다. 소더비 경매에서 약 15억 원에 낙찰된 그림이 액자에 숨긴 분쇄장치가 작동하며 절반이 가늘게 잘렸다. 경매장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뭐야 테러?” 뱅크시는 사건 하루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액자에 분쇄기를 설치하는 모습과 낙찰 후 그림이 잘려나가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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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19.10.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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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자화상 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니 그림을 보내달라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자화상을 그린다. 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그려보고 처음 그리는 자화상, 오랜만에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 화장도 하지 않기에 거울 속에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낯설다. 흰 머리카락, 별다른 표정이 없어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무뚝뚝하게 나를 바라보는 사람,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니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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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경
2019.09.02 14:11